종금사 '해태 살리기'왜 나섰나…함께 쓰러질까봐 미리 불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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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종금사들의 협조융자로 해태가 정상화한다면 금융기관이 앞장서서 부도난 기업을 되살려낸 최초의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당초 재계순위 24위의 해태그룹이 좌초하게 된 것은 근본적으로 무리한 경영 결과였지만 직접적 원인은 종금사들의 여신회수 때문이었다.

그런데 막상 해태가 주력기업에 대한 화의와 법정관리신청에 이르게 되자 종금사들이 '해태 살리기' 에 발벗고 나선 것이다.

종금사들이 해태 살리기에 나선 것은 해태그룹이 주력계열사에 대해 화의와 법정관리 신청을 한 직후인 지난 2일부터. 대한.나라.제일종금등 해태에 대한 여신이 많은 채권종금사들은 종금사들이 공동으로 자금을 대준다면 법원에 의한 정리절차까지 가지 않고도 정상화시킬 수 있다는 주장을 펴기 시작했다.

종금사들은 그후 연일 임원회의를 열어 협조융자의 가능성을 협의한 끝에 7일 29개 전 (全) 종금사들이 참여한 가운데 원칙적인 합의에 이르게 된 것. 이처럼 종금사들이 해태를 되살리기로 결정한 것은 잘못하다가는 종금사 전체가 부실화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 그동안 한보에서 시작해 삼미.진로.대농.기아등 대기업의 잇따른 부도사태로 만신창이가 된 종금사들은 해태마저 무너질 경우 부실규모를 도저히 감내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사실 해태의 주력기업에 대한 화의나 법정관리신청이 받아들여지면 종금사들은 당장 1조7천여억원에 이르는 여신에 대한 이자를 한푼도 못받게 된다.

또 화의조건에 따라 일정 거치기간을 거친 후에도 실세금리보다 훨씬 낮은 이자밖에 받을 수 없다.

신용도 추락과 극심한 자금난을 겪고 있는 종금사로서는 이같은 손실을 감당하느니 차라리 뒷돈을 더 대주더라도 해태를 살려내는 것이 이득이라는 계산이다.

문제는 1천5백억원의 종금사 지원으로 해태가 정상화될 수 있을 것이냐 하는 점이다.

일단 은행권에서는 종금사가 협조융자에 나선다면 지난달 은행권에서 지원하기로 했던 1천억원중 아직 집행하지 않은 4백53억원을 대주겠다는 입장이다.

또 해태가 화의와 법정관리 신청을 철회할 경우 부도어음을 신규어음으로 교환해 주고 적색거래처 지정을 해제하면 당좌거래가 재개돼 정상적인 영업활동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이미 은행권에서 협조융자를 중도포기한 해태가 이 정도의 자금지원만으로 회생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관측도 있다.

또 앞으로 채권금융기관간의 협조가 제대로 이루어질지도 의문이다.

무엇보다 해태 회생의 관건은 박건배 (朴健培) 회장이 약속한 7천억원규모의 자구노력 여부다.

금융계 일각에선 부동산 매각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계획대로 자구계획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부실규모만 더 키우는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김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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