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Sunday] 오바마의 섣부른 희망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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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호 35면

1930년 5월 허버트 후버 당시 미국 대통령의 입에서 기묘한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공황은 끝났다.”

하지만 그해 6월 미국 경제는 본격적으로 공황의 늪에 빠져들었다. 제조업 생산이 곤두박질치고 실직자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후버의 말은 한 달 만에 거짓말이 됐다. 그래서 그의 선언은 29년 10월 폭락 직전에 경제학자 어빙 피셔가 “미국 주가는 고원의 경지에 올랐다(떨어지지 않는다는 뜻)”고 한 말과 함께 ‘대공황 2대 실언’으로 꼽힌다.

후버가 일시적으로 좋아진 몇몇 경제지표에 홀린 탓이었다. 다우지수는 29년 10월 29일 ‘검은 화요일’에 폭락한 이후 그해 연말까지 미끄러졌다.

30년 들어 훈훈한 기운이 도는 듯하면서 후버가 실언한 5월까지 오름세가 이어졌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폭락의 상흔이 다 아물지는 않았지만 아픔을 잊게 할 만한 주가 반등이었다”고 설명했다. 5월엔 실물경제도 나쁘지 않았다. 산업생산이 급격히 줄거나 실업률이 가파르게 치솟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나 후버가 눈여겨보지 않은 다른 지표들도 있었다. 보호무역주의 때문에 국제교역이 급감하고 있었다. 금융 패닉에 빠진 금융회사들이 돈을 빌려주지 않아 중소기업과 농민들이 극심한 돈 가뭄에 시달렸다. 미 경제의 풀뿌리가 망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최근 비슷한 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미 경제가 후퇴 국면에서 빠져나오고 있다는 희망이 보인다”고 말했다.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도 “경기 하강 속도가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보스의 선창에 부하가 화답하는 모양새다.

두 사람이 근거 없이 말하지는 않았다. 미 경제성장의 최대 엔진인 소비가 되살아나는 조짐을 보였다. 지난 1월 소비지출이 전달보다 1% 늘었다. 이런 흐름은 2월에도 이어졌다. 이달 내구재 주문도 전달보다 3.4% 증가했다. 1월에 7% 이상 줄었던 것이 증가세로 돌아선 것이다.

글로벌 경제위기의 진앙인 미국 주택시장에서도 희망의 단서가 발견됐다. 2월 신규 주택 매매가 전달보다 4.7% 늘었다. 기존 주택 매매는 5.1%나 증가했다. 이는 ‘2006년 8월 이후 추락하기 시작한 주택시장에서 처음으로 나타난 의미심장한 변화’라는 게 월가의 평가다. 그러나 30년 그때와 마찬가지로 다른 지표들은 여전히 음울하다. 지난해 4분기 미 경제(GDP) 성장률은 -6.2%였다. 두 번의 침체가 잇따라 발생한 82년 이후 27년 만에 최저치다. 또 2월 경기선행지수도 다시 하락세로 돌아섰고, 국제교역도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무엇보다 미국 고용지표가 좋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2월 일자리 65만 개가 사라졌다. 실업률이 8.1%에 이르렀다. 오바마 행정부가 마지노선으로 정한 실업률은 8%다. 이번 주 금요일에 발표될 3월 고용지표는 더 악화될 듯하다. 월가 전문가들은 일자리 65만 개가 줄어 실업률이 8.5%까지 치솟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여기에다 또 한 차례 금융 패닉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가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낙관론자인 조셉 코언 골드먼삭스 선임 투자전략가는 “지금까지 금융시장에서 나쁜 일들이 벌어졌지만 더 남아 있다”며 “미국은 물론 세계 금융시스템이 (부실자산 등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말했다. 이는 미국의 대표적인 비관론자인 누리엘 루비니(경제학) 뉴욕대 교수의 경고와 비슷하다. 그는 “올해 안에 미 은행이 추가로 국유화되는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엔 씨티그룹이 사실상 국유화됐다.

오바마와 가이트너의 말이 후버처럼 단정적이지는 않았다. 후버도 처음부터 그렇게 선언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미국인의 심리를 호전시켜 경제를 되살려야 한다는 강박감에 결국 그런 선언까지 하게 됐다. 이는 오바마와 가이트너의 경기 판단이 나중에 얼마나 허무맹랑해질 수 있을지를 가늠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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