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는 짧지도 길지도, 희거나 검지도 않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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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호 14면

정수사는 강화도 마니산 동쪽 아래에 누운 작고 아담한 절이다. 대웅전 툇마루에 앉아 정면을 바라보면 멀리 인천 영종도와 은빛으로 빛나는 갯벌이 한눈에 들어온다. 신라 선덕여왕 때 회정 스님에 의해 창건된 대웅전은 조선 초기 주심포 양식으로 정면에는 특이하게 널찍한 마루가 있어 마치 시골집을 찾는 기분이 들게 한다.

월서 스님의 주련 이야기 4- 마니산 정수사 대웅전

법당 건물의 기둥은 원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무게중심이 공포와 기둥을 통해 지면으로 전달되는 특이한 구조다. 초석(礎石)은 가공하지 않은 자연석이다. 이 같은 건축물은 봉정사 극락전이나 부석사 무량수전, 수덕사 대웅전에서도 볼 수 있으며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건물로서 보물 제161호다.

대웅전 내부에는 석가모니불과 네 분의 협시불이 모셔져 있다. 천장의 중앙은 움푹 파인 우물식이며 빗천장에는 학(鶴)과 용(龍)이 그려져 있다. 법당 내부는 온통 화려한 문양(紋樣)으로 가득하여 독특한 불법의 세계를 보여 주고 있다. 또한 창호는 꽃살무늬로 조각되어 화려함과 정교함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데 겹처마의 단청은 여느 절과는 색에서부터 문양까지 그 차이가 크며 매우 아름답다.

정수사에는 유명한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상사화다. 상사화는 꽃이 필 때는 잎이 없고 잎이 달려 있을 때에는 꽃이 없어 꽃과 잎이 서로 그리워한다. 늦여름이면 정수사 마당 앞 산자락에는 노랑 상사화 군락이 형성되기도 한다.

차(茶)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차의 성지라 할 만큼 물맛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이다. 처음 절의 명칭은 정신수련을 하여 도(道)를 얻으라는 뜻인 정수사(精修寺)였는데, 무학 대사의 제자이며 끽다(喫茶)의 달인으로 불렸던 함허(涵虛) 스님이 경내에 솟는 맑은 샘물을 보고 정수사(淨水寺)로 바꾸었다고 한다. 함허 스님이 남긴 선시(禪詩) ‘한 조각의 마음, 한 주발의 차에 있다’는 정수사 샘물로 만든 차의 맛을 단 두 행으로 압축하고 있다.

불교와 차는 종교적·문화적으로 혼연일체가 되어 자연스레 꽃을 피웠다. 차를 마시는 일은 부처와 내가 하나 되는 삶, 차와 선(禪)이 하나 되기도 하고 부처가 되기 위한 수행 과정이다. 그래서 불가에서는 차를 마시는 행위를 두고 ‘다선일여(茶禪一如)’의 경지라고 했으며 고려 때 지눌 스님은 ‘불법은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 곳에 있다’고 설법하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정수사 대웅전의 주련 속에 담긴 내용 또한 부처님의 가르침인 중도(中道)사상을 간결하고 함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거룩하고 위대하신 부처님은/ 짧지도 길지도 않으시며/ 본래 희거나 검지도 않다.’ 말하자면 ‘모자라지 않고 넘치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면 ‘모든 곳에 인연 따라 부처님이 나타나듯’ 반드시 복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즉 ‘있는 그대로’ 살아간다면 인간 최상의 행복인 자기만족을 얻을 수 있다는 얘기다. 금강경을 보면 ‘배가 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라’는 구절이 있다. 이 또한 ‘있는 그대로 행하라’는 깊은 뜻이 숨겨져 있다. 이보다 더 큰 세상의 진리는 없다.

중도란 ‘이변비중(離邊非中)’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말은 ‘이변(離邊) 즉 양변을 떠나나 비중(非中), 그렇다고 가운데도 아니다’는 의미로 쾌락과 고행, 이익과 손해 등 일체의 양변을 떠나되 그 둘의 중간에도 있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원래 중도라는 말은 부처님이 처음 법륜을 굴릴 때 나온 말씀인데 일단 승가에서는 쾌락과 고행의 어느 쪽에도 기울지 말고 수행하라는 의미로 보면 된다. 이것이 바로 보살이 바라밀을 실현하려는 불교의 중도사상이다.

요즘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 세상을 보지 않고, 항상 남에게 말을 덧붙여 말하거나 비틀어 보는 경향이 많다. 자신의 몸속에 욕망에 대한 집착과 거짓이 많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욕망과 분노와 망상에 집착하면 할수록 고통에 빠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결국 부처님의 중도사상은 ‘자기를 속이지 말고 똑바로 보라’는 것이 핵심이다. 20여 년 전 열반하신 성철 스님도 일찍이 ‘불기자심(不欺自心)’, 즉 ‘자기를 속이지 말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얼마나 자기를 속이며 살고 있는가?


1956년 전남 구례 화엄사에서 사미계를 수지했으며 분황사·조계사·불국사 주지를 역임했다. 대한불교 조계종 대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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