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식 기자의 ‘사람·풍경’] 함평 주포 ‘동네아들’ 박인천 경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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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뙤약볕에 포도 익기 좋은 날이었다.

일흔이 넘은 점순(가명) 할매는 포도밭에서 날품팔이를 했다. 남편이 먼저 가서, 할매들은 대개 혼자 산다. 자기 땅이 없으니까 남의 논밭에 간다. 할매는 참을 먹다 막걸리를 들이켰고, 주사를 시작했다. 할매의 그것은 독했다.

오사럴 놈, 나 버리고 갔재.

어디를 향하는 지 알 수 없는 욕을 해대며, 할매는 보이는 사람마다 때렸다. 신고를 받은 인천씨가 출동했다. 출동해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맞으며 말리는 것 뿐이었다. 그저 맞다가 “진짜 와 이라요!”하곤, 팔을 꽉 붙잡았다. 의외의 역습에 할매는 주눅이 들었다가도, 이내 어디를 향하는지 알 수 없는 욕을 해댔다. 반나절을 다투다 할매는 집으로 갔다.

전라남도 함평 석성리 주포분소. 경찰은 1명뿐이다. 1층은 여느 파출소 같은 사무실이고, 2층은 가정집이다. 직주일체(職住一體)라고 한다. 서쪽으로 돌머리해수욕장 북으로는 목교저수지까지, 4800평(15.9㎢) 정도가 관할이다. 예서 나고 자란 박인천(39) 경사는 이곳에서 4년 넘게 경찰로 일했다(2000년~2002년, 2007년~현재). 아내 김순희(35)씨와 초등학교 다니는 두 자녀가 있다.

다시 지난해 여름 할매가 주사를 부렸던 그날. 자정이 다된 밤이었다. ‘바바방~’ 사발이(네 바퀴 오토바이)를 타고 할매가 쳐들어왔다. 낮술이 덜 깼는지 밤에 더 마셨는지, 할매는 분소 문을 부서져라 팼다. 일어나는 인천씨를 순희씨가 잡았다.
내가 할라요.

인천씨가 낮에 잡은 팔뚝이, 할매는 아린다고 했다. 억울하다고 했다. 뭣이 그리 억울허요, 순희씨는 물었다.

할매는 얘기를 쏟아냈다. 젊은 시절 첩질 꽤나 한 남편 얘기가 8할이었다. 철 모르던 시절 시집 온 얘기며 자식 키운 얘기까지. 할매는 울기도 했다. 한 얘기 또 하고, 한 얘기 또 했다.

자식새끼 번호좀 찾아줄랑가, 할매는 순희씨에게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한동안 연락이 없던 자식이었는데, 할매는 “피곤할틴디 어여 자라”하곤 금세 끊어버렸다. 그거 하고 싶어 종일 난리를 폈소, 순희씨는 그렇게 생각만하고 말았다.

직주일체인 분소에서 순희씨는 가끔 경찰이 된다. 경찰에선 ‘부인(婦人)조력 시스템’이라고 한다. 순희씨는 마을에서 중매도 섰었다. 친구를 동원해 미팅 주선하기를 몇차례, 두쌍을 맺어주는 데 성공했다. 이 일로 순희씨는 칭송을 들었고, 인천씨는 ‘분소 성공사례’에 뽑히기도 했다. 2000년, 2001년의 일이다. 지금은?

택도 없소. 젊은 총각도 없고, 여기 시집오려는 아가씨도 없고이. 필리핀이나 베트남에서 오긴하더만.

전남 함평군 석성리 주포 노인회관에서 박인천 경사(右)가 할머니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한 집 건너 한 집은 할머니 혼자 사는 곳이 주포마을이다. 남편은 먼저 갔고 자식들은 도회지로 떠났다. [사진=장정필 프리랜서 기자]

이 곳엔 강력 사건이 없다. 그래도 인천씨는 아침저녁으로 순찰을 돈다. 빨리 달리지도 않는데, 헬멧은 꼭 쓰고 120cc 싸이카를 탄다. 먼저 옥자(가명ㆍ83) 할매집을 들렀다. 중풍약을 먹고 있는, 혼자 사는 옥자 할매는 인천씨의 특별관리 대상이다.
지난해 3월이었다. 할매는 맹장염에 걸려 목포 병원에 실려갔다. 병원에서 보호자가 필요하다고 했다. 인천씨는 20년 넘게 못 본 동네 형, 할매의 아들을 떠올렸다. 서울에서 일용직으로 일하고 있다는, 집도 없이 여기 저기 떠돈다는 그를 찾아야 했다. 함평읍을 뒤져 서울에서 같이 일했다는 사람을 찾아 연락처를 받았다. 아들이 왔고, 며칠이 지나 할매는 퇴원했다.

밤이었다. 할매 아들, 그러니까 동네 형이 찾아왔다.

내일 떠나. 고맙구먼 인천이.

형은 동네 대빵이었다. 작지만 맷집은 차돌이었다. 돌머리 해수욕장 모래사장에서 야구를 할 땐, 50명은 족히 되는 어린 것들이 몰려들었다. 경기에 지면 형은 빠따를 들었다. 발목까지 물이 차는 밀물이 돼서야 경기는 끝났다. 그많던 아이들이 대부분 고향을 떠났다. 마을엔 어린 것들이 없어, 석성리에 두 개 있던 분교도 모두 폐교됐다.

이 곳 3월엔 실장어 잡이가 한창이다. 알을 깨고 나온 어린 장어들이 바다에서 강으로 옮겨가는 때가 봄이다. 뭐가 그리 급한지, 어린 것들은 다 자라기도 전에 무섭게 떠나갔다. 알을 낳은 어미는 바다에서 늙어 죽을 것이다. 깊은 바다는 주포고, 강은 서울일지 모른다.

인천씨는 주포 노인회관도 순찰했다. 인천씨의 관할엔 6개의 작은 마을이 붙어 있다. 그 중에서도 주포마을은 유난히 노인네가 많다. 한집 건너 한집은 할매 혼자 산다. 할매들은 점10원짜리 화투를 치고 있었다.
인천이 왔냐.

경찰님한테 반말하면 안되재. 깔깔.

할매는 수백개의 주름을 만들며 웃었다. 할매들은 인천씨를 붙잡고 4월 2일에 떠날 태백 여행을 자랑했다. 2년간 들었던 계가 때가 됐다고 했다. 다른 할매는 속도방지턱을 없애준 얘기도 했다.

카브 길도 아닌디 고렇고롬 맹글어 놔선, 오만 차들이 덜컹거려 잘수가 있어야재. 인천이 덕에 잘 해결됐구마이.

‘국민연금을 환급해 준다’는 무시무시한 보이스피싱 얘기(노인을 주로 노린다), 빈집털이들이 노리는 금반지 얘기(농번기엔 젤로 무섭다), 논에 내다 놓은 펌프 도둑 얘기(한두푼 가는 게 아니다).

이곳에서 경찰의 역할이란 이렇다. 한번은 소를 잃어버렸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인천씨가 출동했다. 밧줄로 옭아매려고 하면 소가 들이받으려 해, 뒤로 넘어지길 여러번. 결국 뿔에 줄을 묶는데 성공했는데, 힘이 달려 질질 끌려다니고.

인천씨는 경찰이라기보다, 주포에선 희귀한 젊음이었고 아들이었다.

겨울엔 노인네들 난방 체크하는 게 젤로 중요헌디. 그렇다고 내가 연탄값 대는 건 아니요. 아픈지 확인하는 게 중요허고. 것도 내가 병원비 내주는 건 아니재. 읍사무소에 알려주면 되고. 새끼들 전화 안되면 수소문해 연락처 찾아주고. 그렇다고 데려다 살게는 못허요. 돈 떼이면 그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봐주긴 허는디. 내가 받아주진 몬허고. 집 비울 땐 순찰 예약을 신청하라고 하지만서도, 집 털리면 돈 물어내진 못허니께…, 별로 허는 게 없소이.

강인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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