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도올심득 동경대전1' 外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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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심득 동경대전1』
최제우 지음, 김용옥 역주, 통나무, 288쪽, 8500원

『수운의 삶과 생각-동학1』
표영삼 지음, 통나무, 400쪽, 1만5000원

도올 김용옥(56) 중앙대 석좌교수가 강연과 책을 통해 제시한 필생의 과제는 ‘한국 사상사 대계’를 쓰는 것이었다. 하지만 잇단 방송 출연에다 이 분야 저 분야 넘나드는 그의 모습을 마땅찮게 보는 이들의 생각은 달랐다. ‘언제 공부해서 한국 사상사를 쓰겠나’하는 것이었다.

최근 도올이 내놓은 『도올심득 동경대전(東經大全)1-플레타르키아의 신세계』는 자신의 바람과 타인의 우려를 다소나마 풀어줄 실마리를 제시한다. 연내에 두 권을 더 내 모두 세 권이 될 예정. 나머지 두 권은 동학(東學)의 창시자 수운 최제우(1824∼1864)가 쓴 『동경대전』에 대한 번역과 해설이다. 1권은 2·3권에 대한 서론이며, 그 주제가 바로 ‘조선사상사대관(朝鮮思想史大觀)’이다.

왜 갑작스레 동학인가? 도올은 “동학은 조선 문명이 유교와 불교를 통해 추구해 온 인문주의와 민본주의를 이념 속에서만 아니라 현실의 정치·사회 영역에서도 철저하게 구현하려고 한 노력의 정점”이라고 했다.

동학이라는 정점에 도달하기 위한 ‘노력의 과정’은 결국 한국 사상사의 흐름이 되는 셈이다. 구체적으로는 공자·맹자의 원시 유학과 불교·도교의 만남, 고려 불교가 조선의 신유학으로 대체되는 과정, 그리고 퇴계 이황의 도덕 제일주의를 거친 조선 사상사의 줄기가 서학(西學:기독교와 서양 과학)의 충격을 헤쳐나가며 궁극적으로 최한기의 기학(氣學)과 최제우의 동학으로 귀결되는 과정이다.

도올식 해석의 이정표가 되는 신조어가 하나 등장한다. 도올 자신이 만든 ‘플레타르키아(pletharchia)’라는 용어다. 번역하면 ‘민본성(民本性)’. 플레타르키아, 곧 민본성이 반만년 한국 사상사를 관통하는 키워드라는 해석이다. 그는 민본성의 원형을 공자의 인(仁)을 계승한 맹자의 성선(性善)과 혁명사상에서 찾았다. 그러니까 민본성을 먼저 찾아놓고, 서양인을 위한 번역어로 플레타르키아(‘다중’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plethos와 ‘지배한다’는 뜻의 arche를 합성한 조어)라는 말을 만들어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는 성선의 명분이 분명했기에 ‘부패한 지도자는 쫓아낼 수 있다’는 혁명사상이 가능했다고 도올은 본다. 결국 ‘성선의 민본성’을 구현하기 위한 사상적·실천적 노력이 동학으로 귀결된다는 설명이다. 그것은 서양 근대성의 핵심인 민주(民主)와 차이를 보인다. 민주는 ‘인간의 원죄’관념 같은 성악(性惡)에 기초하고 있다. 민주 개념의 바탕에 깔린 서양의 ‘합리성’을 넘어, 이성과 감성이 조화를 이루는 ‘합정리성(合情理性)’을 조선시대의 사단칠정(四端七情) 논쟁에서 이끌어내기도 했다.

최제우가 이황-김성일-이상원을 거쳐 최옥으로 이어지는 영남 유학의 적통을 계승했다는 주장은 파격적이다. 최옥이 63세에 낳은 아들이 최제우로, 최제우가 17세가 될 때가지 성리학 공부만 시켰다고 한다. 도올이 “조선사상의 큰 물줄기 속에서 수운을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근거다.

도올이 말하는 동학은 종교가 아니다. “동학이 평범한 종교운동으로 전락한 것은 제3대 교조 의암 손병희가 동학을 천도교라 이름하고 하나의 종교로서 선포한 1905년 12월 1일 이후의 사건 ”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현재 천도교에서 쓰는 ‘한울님’이란 표현은 ‘하늘님’으로 해야 하고, 수운의 삶 속에서 신비롭게 묘사되는 ‘을묘천서(乙卯天書)는 마테오리치가 쓴 『천주실의(天主實義)』”라고 도올은 주장했다. 어려서부터 동학을 배운 표영삼(79)씨의 자문을 거친 주장이라고 한다.

이번에 통나무 출판사가 함께 펴낸 표씨의 『수운의 삶과 생각-동학1』(전3권 예정)에 도올의 서문이 들어 있다. 표씨에 대해 도올은 “일찍이 동학에 입도한 조부 표춘학으로부터 도를 전수받아 오로지 ‘동학을 하는’외길 인생을 걸어 온 1세기반 동학사의 산 구현체”라고 소개했다. 도올은 표씨와 20년간 교류해 왔다고 한다. 두 책이 보완 관계인 셈이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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