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산요증권 도산 원인과 의미…금융기관 대량 도태 '신호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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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산요 (三洋) 증권의 도산은 일본 금융빅뱅 시대의 본격화를 알리는 신호탄으로 풀이된다.

경영의 불투명성, 거액의 부실채권등 고질적인 문제를 치유하지 않는한 일본 금융기관의 대량 도태는 불가피하다는 예측이 현실화된 것이다.

대장성은 산요증권이 94년부터 흔들리자 도산 방지를 위해 사방으로 뛰었다.

주요은행들에 협조융자를 독려하고 생명보험사들에게 대출금 상환 연기를 요구했다.

과거의 '호송선단' 방식으로 다시 후퇴한 것이다.

여기에는 지난 4월25일 중소보험사인 닛산 (日産) 생명의 도산이 크게 작용했다.

닛산생명 도산 이후 5개월 동안 일본 보험계약고는 사상최고인 21조엔이 감소, 충격을 주었다.

신용이 생명이 금융기관이 흔들릴 경우 금융 전반에 엄청난 부작용이 초래된다는 것을 경험한 것이다.

그러나 대장성의 강요는 일시적인 효과를 거두었을 뿐 끝까지 먹혀들지는 않았다.

산와은행은 산요증권과 국제증권을 합병해 그룹계열사로 가져가라는 대장성 권고를 거부했다.

금융빅뱅으로 은행 - 증권간의 상호진입이 가능해진 마당에 굳이 부실증권사를 떠안을 필요가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대장성 지시거부는 과거에는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다.

재생 시나리오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대장성은 막판에 "산요증권 도산은 시장원리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 이라고 발을 빼버렸다.

그러나 거액의 여신이 묶이게 된 생보사들은 "무책임한 발언" 이라며 "대장성에게 사기당했다" 고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협조융자를 해준 도쿄미쓰비시 (東京三菱).다이와 (大和).일본채권신용은행도 "부도가 뻔히 내다보이던 지난달 6일의 88억엔 지원금을 포함, 모두 2백80억엔 이상을 날리게 됐다" 고 대장성에 대한 불신감을 토로했다.

산요증권의 도산은, 개방시대를 맞아 국제경쟁력을 상실한 금융기관에 대한 인위적인 보호가 비용증가만 초래할 뿐이라는 교훈을 주고 있다.

철저한 비밀주의에도 불구하고 "산요가 위험하다" 는 소문이 나돌면서 외국투자가들은 산요주식을 무차별 투매했다.

여기에다 총회꾼 스캔들로 고객의 외면을 받으면서 일본 증권사들의 수익성도 악화됐다.

지난달엔 도쿄 주식거래시장에서 외국계 모건 스탠리가 노무라를 제치고 영업1위를 차지했고, 전환사채 분야에서도 골드만 삭스가 수위에 올랐다.

산요증권은 4천명이 넘던 종업원을 4년간에 걸쳐 2천7백명선으로 줄이는 필사적인 감량경영을 펼쳤지만 거액의 부실채권과 고객이탈로 수익성 악화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도쿄 = 이철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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