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공부 개조 프로젝트] 처방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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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숙제 활용해 ‘내 공부’로 만들기

주영이에게 지금 절실한 것은 학습 시간을 줄여 공부에 대해 ‘막막하다’ ‘답답하다’는 느낌을 없애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하루 3시간 이상씩, 그리고 주말을 꼬박 투자하는 숙제에 변화를 가져보기로 했다. 검사를 위한 소극적인 공부가 아닌 적극적으로 숙제를 활용해 ‘내 공부’로 만드는 것이다.

프로젝트팀은 엄마 생각처럼 숙제가 공부가 되기 위해 ‘숙제 구조조정’부터 시작했다. 숙제 양을 줄이는 게 급선무. 주영이의 한 주 숙제는 학원·학교에서 대략 20여 건이다. 이를 절반 가까이 줄이는 것이다. 여기서 어머니 박씨의 역할이 필요했다. 박씨가 학원에 연락해 ‘주영이에게 숙제 양을 줄여 달라’고 직접 요청하게 했다. 숙제 양을 줄인 상태에서 남은 숙제는 천천히, 그리고 집중해서 처리하도록 요구했다.

② 복습 타이밍 놓치면 ‘완전 부담’

프로젝트팀은 “주영이는 성실한 성격이지만 공부가 부담이 되면 머지않아 지치게 된다”고 충고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학습 타이밍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주영이는 평소엔 학원 중심으로 학습을 하고 시험기간 2~3주 전부터 몰아서 내신공부를 하는 스타일. 박 소장은 “1시간 배운 것을 그날 복습하면 5~10분이면 충분하지만 한참 지나 시험기간에 하려면 3~5시간은 족히 걸린다”고 충고했다. 시험기간에 한꺼번에 몇 달치를 복습하면 당연히 공부 양이 많고 시간은 부족하다. 더 긴장되고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악순환 구조’에 접어드는 것이다.

평상시 복습할 타이밍을 놓치고 시험기간에 부담이 커지니 본능적으로 평소엔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시험기간이 되면 다시 ‘세게’ 공부해야 하니 숙제를 빨리 끝낸 뒤 쉬고 싶어진다. 오씨는 “고학년에 올라가 복습할 타이밍을 놓치면 공부할 게 더 많아져 하기도 싫고 부담이 돼 지치게 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주영이에게 ‘복습의 징검다리’를 주문했다. 그날 배운 진도는 10~20분이라도 투자해 반드시 정리하고 넘어간다. 주말에 일주일 단위로 2차 복습을 해 시험기간이 되기까지 주말 복습이 징검다리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③ 외고 입시 앞두고 수학 포기?

박 교사는 “주영이 같은 성격은 원하는 외고에 합격해 자신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이를 위해 외고 입시에 불필요한 수학 과목을 전략적으로 잠시 접어두는 것이 한 방법이라고 제시했다.

엄마 박씨는 “딸이 수학을 부담스러워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완전히 손을 놔버리면 오히려 불안할 수 있다”며 염려했다. 프로젝트팀이 내린 결론은 학교와 학원의 수학 진도를 맞추는 것이다. “대부분 수학학원이 학교 진도와 달리 선행학습을 하는데, 학교 진도와 맞으면 시험 준비를 따로 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학원을 예습·복습에 전략적으로 활용해 따로 학습 할 시간을 줄이는 것이다.

수학의 경우 예습을 한 뒤 본 수업에서는 풀이 과정을 확인하는 정도로 하고, 사회 등의 과목은 수업 후 짧은 복습을 하게 했다.

④ 부모 역할도 중요

아버지 최은철(43)씨는 자녀의 공부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학습법·시사 관련 기사 등을 e-메일로 보내기도 한다. 주영이에게 바라는 점은 지금보다 책과 신문을 더 많이 읽었으면 하는 것. 지금까지는 시간적 여유가 없어 불가능했다. 하지만 ‘선순환 구조’에 진입하면 가능해진다.

‘선순환 구조’는 ‘효율적인 공부→공부시간 감소→여유 확보→독서·시사에 대한 관심→삶의 의욕 향상’으로 이뤄진다. 의욕은 다시 공부 효율을 높이고, 성적을 끌어올리는 구조다.

프로젝트팀은 어머니 박씨에게 여러 가지를 당부했다. ‘좋더라’식 추천서보다는 딸이 좋아하는 영어 소설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하게 했다. 주영이가 관심 있어 하는 신문 기사 2~3개씩을 스크랩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도록 권했다.

주영이는 낯선 사람 앞에서 자기 얘기를 하는 데 익숙지 않다. 이러다 보면 외고 입시에서 불이익을 볼 수도 있다. 구술면접은 소홀히 지나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엄마의 도움이 필요하다. 프로젝트팀은 식사시간을 이용해 박씨가 주영이에게 시사적인 질문을 던지라고 당부했다.

아버지 최씨에겐 딸이 고교에 가기 전에 진로와 적성에 대해 생각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정보를 모아 대화를 나누도록 부탁했다. 주영이가 머릿속에 있는 것을 정리해 논리적으로 말하는 연습을 하는 데 있어 부모가 돕도록 한 것이다.

글=박정현 기자
사진=황정옥 기자



프로젝트 신청 사연

외고 보내고 싶어 물어보지도 않고 신청했어요

“주영이가 외고에 가고 싶어 하는데 공부하는 시간에 비해 성적이 안 나와 속상해요. 효과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어 공부 개조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어요.”

최주영(14·서울 Y중 3)양의 어머니 박미정(43·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씨는 딸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엄마 욕심’에 일단 신청부터 했다. 큰딸을 외고에 보낸 경험이 있어 ‘가고 싶은 학교’와 ‘갈 수 있는 학교’가 다르다는 것 정도는 박씨도 알고 있다. 학기 초와 중간고사·기말고사에 따라 ‘갈 수 있는 학교’가 달라진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엄마들에겐 ‘이 학교에 아이를 꼭 보내고 싶다’는 로망 같은 게 있어 아이에게 바라게 되는 것 같아요.”

박씨는 내성적인 딸이 엄마의 제안을 쉽게 받아들일 거란 기대를 못했는데 예상과 달리 쉽게 동의해 줬다. 최양은 “성적이 오르면 엄마보다 저에게 더 좋은 일이니까요”라고 말했다.

사실 최양의 성적은 상위권이다. 중학교 내내 전교 15~30등을 유지했다. 자기 관리를 잘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한다. 주위에선 ‘잘하고 있는데 뭐가 문제냐’고 하지만 엄마 생각은 그렇지 않다. 최양은 수학을 제외하면 전 과목이 90점대.

일단 외고에 합격하는 게 중요하니 수학을 포기하라는 주위의 충고를 들을 때마다 박씨는 마음이 흔들린다. 딸이 나름대로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성적이 오르지 않아 노력하는 게 아까울 지경이다. 엄마의 눈엔 더없이 성실한 딸. 학교에서 돌아와 매일 숙제 세 시간, 학원 세 시간….

“이렇게 하면 성적이 더 잘 나와야 하는 거 아니에요?”

박씨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딸의 등수가 껑충 뛰어오르길 바라는 건 아니다. 다만 딸이 효과적인 공부법을 알게 돼 노력이 덧없지 않게 되길 바랐다. 딸의 성적 향상 방법에 ‘팔랑귀’가 될 수밖에 없었던 박씨는 “프로젝트팀을 만난 뒤 혼란스러운 머릿속에 확실한 그림이 그려진 듯하다”며 안도했다. 앞으로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이 더 커진 것 같아 부담이 되지만 만족했다. 프로젝트팀에 거는 기대는 최양 역시 크다. 신문을 통해 자신의 얼굴과 성적이 모두 공개되는 것에 큰 용기를 냈다는 최양. “자신감이 부족한 편인데 공부 개조 프로젝트를 통해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수줍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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