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병든 호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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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동시베리아 남쪽에 있는 바이칼호 (湖) 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수심도 가장 깊은데다, 그 경관 (景觀) 이 매우 아름다운 초승달 모양의 호수로 유명하다.

주변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불교도인 까닭도 예부터 이 호수를 신성시 (神聖視) 해 온 전통과 무관하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이 호수에는 전설도 많을 뿐만 아니라 오래도록 수많은 예술작품의 소재가 돼 오기도 했다.

가장유명한 전설은 호수 밑바닥에 신 (神) 이 있다는 이야기다.

이 신은 툭하면 폭풍우를 일으켜 어부나 항해하는 사람들을 끌어내려 재판한다는 것이다.

자연을 거역하거나 호수를 훼손한 사람들은 어김없이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는 이 전설을 그 지방사람들은 철석같이 믿고 있다.

한데 이 전설은 수심 1천6백m의 깊은 곳에서도 '불가사의한 심해어 (深海魚)' 가 산다는 보고서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대부분의 호수에서는 수심 3백m가 넘으면 생물이 생존할 수 없다는 게 정설이기 때문이다.

바이칼호에는 2천5백종 이상의 동.식물이 서식하는데 최소한 1천3백종이 오직 이곳에서만 서식한다니 신비스러울 정도다.

공산주의체제 아래서 거의 방치되다시피 했던 이 호수에 대해 서방의 과학자들과 환경보호론자들이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겨우 90년대부터지만 아직도 환경오염에 대한 적절한 법적 규제근거가 마련돼 있지 않다니 이 아름다운 호수가 요즘 세계적인 이슈로 떠오른 것은 당연하다.

바이칼호는대표적이지만 오염으로 인한 호수의 생태계 파괴가 심각한 양상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깊으면 깊을수록 산소부족이, 얕으면 얕을수록 비옥함으로 인한 부영양화 (富營養化)가 생태계 파괴의 원인을 제공한다.

특히 수위변동의 폭이 크고 수초대가 잘 발달하는 인공호는 자연호에 비해 부영양화가 더욱 심각하다니 인공호가 1만8천개나 되는 우리나라는 호수다운 호수가 없는 셈이다.

'호수 같은 눈동자' 니 '내 마음은 호수' 니 하는 시구들이 보여주듯 호수는 잔잔함.고요함.아늑함 따위의 상징적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그런 이미지들은 '백조의 호수' 같은 곳에서나 가능할 뿐 더러워지고 생태계가 파괴된 호수에서는 어림도 없다.

결국 인간은 '아름다운 호수' 를 노래할 자격이 없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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