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강생 몰리는 동사무소 축제학 특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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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대 김유나(23·영문학4)씨는 수요일 오후가 되면 서울 마포구의 서교동자치회관으로 향한다. 축제를 공부하기 위해서다. 김씨의 꿈은 고향 나주의 특산물인 배와 음악을 접목한 배축제를 만드는 것이다. 김씨는 “학교에서는 경영학이나 음악은 가르쳐 줘도 축제를 어떻게 기획하고 개최해야 하는지는 가르쳐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의 ‘축제학 강좌’에 매주 대학생 150명이 몰려 성황을 이룬다. 18일 서교동자치회관에서 열린 강좌에서 문화기획가 류재현 감독(右)이 강의하고 있다. [박종근 기자]


매주 수요일 김씨처럼 축제를 배우기 위해 또래 대학생 150명이 서교동자치회관을 찾는다. 40~60대 주부 30여 명이 모이는 다른 구청의 문화강좌와는 수강생 숫자와 열기가 사뭇 다르다.

18일 오후 7시, 세 번째 강좌가 열린 이날 자치회관은 열기로 가득찼다. 학생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축제의 미래를 이야기하고, 아이디어를 발표했다.

글래스턴베리, 버닝맨 등 해외 유명 록 페스티벌의 성공을 주제로 한 이날 수업은 예정된 세 시간을 한 시간 넘겨 오후 11시에야 끝났다. 이것으로도 부족해 수강생들은 홍대 앞 클럽으로 옮겨 음악을 들으며 ‘2교시 수업’을 새벽까지 계속했다.

‘축제학’을 가르치는 ‘잔다리 수요 아카데미’의 현장이다. 잔다리는 서교동의 옛 이름으로 ‘작은 다리’라는 뜻이다. 강사는 문화기획가 류재현(45) 감독. 류 감독은 홍대클럽데이와 서울월드DJ페스티벌을 기획한 주인공이다. 홍대클럽데이는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 1인당 2만원만 내면 홍대 근처의 모든 클럽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한 행사로, 2001년 3월 30일 생긴 이래 서울의 대표 축제로 자리잡았다. 서울월드DJ페스티벌은 국내외 DJ들과 힙합밴드, 댄스팀 등이 참여하는 댄스 축제로 지난해 5월 한강공원 난지지구에서 열렸다.

류 감독이 문화강좌를 열기로 기획한 것은 올해 초. ‘홍대 근처에 살아도 홍대 문화를 알 길이 없다’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서다. 서교동자치회관이 강의 장소를 선뜻 내놓았다. 그는 “홍대 인디문화를 알리는 것은 물론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서민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크고 작은 축제를 다양하게 열고 싶어 강좌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류 감독은 수강생들과 함께 ‘노는 법’을 연구한다. 축제의 기획, 프로그램 구성에서 해외 홍보, 캠핑장 관리, 음악 구성까지 내용이 다채롭다. 때로는 수업이 끝난 뒤 류 감독과 수강생들은 인근 클럽에서 음악에 몸을 맡기며 토론을 이어간다.

수강생들은 수요일의 ‘정규수업’만으로는 부족해 삼삼오오 스터디그룹을 꾸려 토요일마다 만난다. 학생들의 아이디어는 곧바로 현장에 적용되기도 한다. 이날 수업에서 홍익대 하현숙(24·경영학4)씨가 발표한 ‘캠핑장 재미있게 꾸미기’는 5월 8~9일 열리는 서울월드DJ페스티벌에 적용될 예정이다.

4월 말까지 2개월간 계속되는 강의의 수강료는 5만원. 수강료는 초청 DJ, 인디문화평론가 등 외부 강사의 특강비와 수업 재료비, 수강생 간식비 등으로 나간다. 회계 관리와 운영을 학생들이 직접 한다. 이영희 서교동장은 “젊은이들이 직접 운영하는 ‘풀뿌리 축제 스터디’인 만큼 이 분야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는 산교육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현택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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