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씨가 포로가 된 건 1951년 한석산 전투에서다. 이후 악명 높기로 소문난 만포 교화소.아오지 수용소.강계 교화소 등을 거치며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아야 했다. 그가 형기 13년을 마치고 나왔을 때는 함께 입소한 포로 500명 중에서 단 50명만이 살아 남았을 정도였다. 조씨는 지하 1000m 속 막장에서 한 강제노역 탓에 규폐증과 뇌졸중 등 갖은 병에 시달려야 했다.
묘비에 '남쪽에서 온 사람'이라고 새겨달라 유언했던 조씨는 1994년 70여시간 동안 죽을 힘을 다해 바다를 건너 고향의 품에 안겼다. 그러나 북한에는 여전히 국군포로가 2000명 넘게 남은 것으로 추정된다. 대부분 조씨처럼 일흔이 넘은 노인들이다. 분단의 비극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