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앙드레 고즈 '현재의 곤궁,가능한 부' 화제…'포스트 노동사회'진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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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산업자본주의를 지탱해온 주역인 임금노동자들은 노동력을 제공하는 대가로 받는 임금을 수입원으로 살아왔다.

그러나 시대가 정보화 사회로 급속하게 이행하고 노동력의 필요성이 줄면서 임금노동자들의 생활에 대한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노동력보다는 정보가,에너지의 양보다는 정보를 다룰 줄 아는 기술이 더욱 유용한 생산력으로 대접받는 정보화 사회에서도 과연 임금으로 살아가는 전통적 의미의 노동자들은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프랑스의 대표적 좌파경제이론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앙드레 고즈 (74)가 이 문제에 천착해 쓴 신간이 프랑스 지식인들 사이에 화제가 되고 있다.

'현재의 곤궁,가능한 부 (富) (Misere du present, Richesse du possible.갈릴레刊)' 가 바로 그 책. 고즈는 이 책에서 노동의 대가로 받는 임금으로 살아가는 임금노동자 사회의 소멸을 예견하고 이런 분석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사회적분배 및 생산정책을 요구하고 있다.

고즈의 사색은 '포스트 노동사회' 에 대한 전망으로 확장된다.

고즈는 일자리와 일의 양은 대폭 줄어들지만 사회적 총생산은 더욱 많아지는 정보화사회에서 늘어난 생산력의 결실을 국민수당의 형태로 모든 국민에게 제공, 안정적이고 충분한 수입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사회구성원이 각자 원하고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함으로써 정보화사회에서 생산력을 좌우하는 '지적총량' 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포스트 노동사회에서는 근로시간은 대폭 줄어드는 한편 일의 성격은 불연속적이고 다기능적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고즈의 예측이다.

일정한 직장에서 일정한 일만 하는 임금노동자 시대가 끝나고 전방위적 프리랜서 노동자 시대가 열린다는 것이다.

정책당국자들은 어차피 불가능한 '일자리 창출에 의한 고용문제 해결' 에 매달리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정보화 시대라는 새 상황에 맞춰 새로운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 고즈의 주장이다.

고즈는 이 방법 외에는 임금노동의 불안을 해소하는 방안은 없다고 단언한다.

현재 미국.영국.남미 등에서 전체 노동자의 3분의 1 이상이 임시노동자로 전락하고 세계적으로 30~50%의 노동인력이 이미 과잉상태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최근들어 나타나고 있는 이러한 노동시장의 불안정성과 과잉현상을 고즈는 소멸을 앞둔 임금노동사회의 마지막 모습이며 '일자리를 놓고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강요하는 최악의 종속과 지배.착취구조' 라고 지적한다.

오스트리아 태생의 유대인으로 프랑스에 정착한 고즈는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에 마르크스주의를 결합, 사고의 지평을 확대하면서 활발한 저술활동을 통해 현실참여적 좌파지식인으로 활동해 왔다.

그가 저술한 '노동전략과 신자본주의' (64년) , '일상자본주의 비판' (73년) , '노동의 변신' (88년) , '자본주의.사회주의.환경주의' (91년) 등은 20여개국어로 번역돼 지금도 전세계 노조와 정치운동가.환경운동가들의 필독서가 되고 있다.

파리 = 배명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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