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시민의 강엔 모래무지 사는 1급수가 흐른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06호 22면

하수도 물을 정화해 만든 경기도 부천시 상동의 시민의 강. 1~2급수 물에 잉어 등 물고기가 노는 이 인공 하천은 최근 국토해양부가 주최한 ‘한국의 아름다운 하천 100선’에 뽑혔다. 최정동 기자

경기도 부천시 상동신도시를 감싸고 도는 ‘시민의 강’.
산책로와 자전거도로·생태학습장까지 갖추고 있어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 강은 흔히 볼 수 있는 하천 같지만 사실은 2003년 완공된 자연형 인공 하천이다.
폭 2~3m에 길이 5.5㎞인 이 강에는 가뭄이 든 요즘도 쉴 새 없이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굴포천하수처리장에서 오수를 처리한 물을 매일 2만5000여㎥씩 흘려 보내기 때문이다. 미생물을 이용해 물속 오염물질을 제거하고 자외선 소독까지 거친 물은 생물학적산소요구량(BOD) 0.9ppm의 1급수로 어린이들이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수준이다.

오·폐수 재활용

시민들도 ‘시민의 강 지키기 모임’을 만들어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환경교육도 하고 쓰레기 줍기, 녹조 제거, 수초 심기 등의 보호 활동을 하고 있다. 덕분에 모래무지·갈결기·왕종개 같은 1급수에만 살 수 있는 물고기도 발견된다. 이 ‘시민의 강’은 11일 국토해양부가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하천 100선’에 뽑히기도 했다.

인근 인천시 서구 가좌동의 가좌하수처리장도 2002년부터 오수를 정화해 현대제철에 공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연간 400만㎥ 규모다. 냉각수·보일러용수 등 공업용수로 사용하기 전에 먼저 마이크로필터로 크기 1㎛(마이크로미터·1㎛=1000분의 1㎜) 안팎의 작은 세균까지 걸러낸다. 역삼투 시스템까지 거치면 물속에 녹아 있는 오염물질이 대부분 제거된다. BOD 11ppm 정도였던 하수처리장 방류수를 다시 걸러낸 공업용수는 BOD가 0ppm이다. 재이용을 위한 시설 투자에 80억원이 들어갔지만 공업용수에 비해 물값이 싼 덕분에 연간 27억원씩 비용을 절약하고 있다.

오·폐수를 처리해 다양한 용도로 재이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2000년 2.9%였던 하수 재이용률이 2007년 9.9%로 늘었다. 양으로 따지면 연간 6억4000만㎥가 재활용된다. 진주 남강댐 저수량의 두 배에 해당하는 양이다. 품 안에 들어와 있는 물을 재이용하면 수자원을 늘리는 것도 되지만 에너지도 절약할 수 있다. 에너지 절약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것이기도 하다. 또 강물 취수량을 줄여 하천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방법도 된다.

대구에서는 공장 폐수를 처리해 재활용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달성산업단지 폐수종말처리시설에서 내보낸 처리수를 매일 1만5000㎥씩 고도(高度)처리해 7㎞ 떨어진 현풍공단 내 제지업체로 보낼 계획이다. 처리수를 재이용하면 제지업체는 ㎥당 440원하는 물값을 100원 정도로 낮출 수 있어 하루 600만원, 연간 약 22억원을 절약할 수 있다. 공업용수를 보낼 관로(管路) 설치는 코오롱그룹의 자회사인 환경시설관리공사가 맡기로 했다. 전체 관로 설치비용 가운데 21%인 16억8000만원을 환경시설관리공사가 투자하고 향후 15년간 투자비를 회수하게 된다.

민자로 진행되면 환경부와 대구시는 관로 설치에 들어갈 국비와 지방비를 절약하게 된다. 더욱이 낙동강의 수질오염 총량관리 대상인 대구시는 추가 개발의 여지도 얻게 된다. 총량관리제를 적용하는 지역에서는 오염물질 배출량 한도를 지키는 범위 내에서만 개발이 가능하다.

경북 포항시 상도동의 포항하수처리장도 하루 13만여㎥의 방류수 가운데 10만㎥를 다시 걸러 인근 포스코와 철강단지에 공급할 계획이다. 역삼투막으로 여과하는 과정 등 세 단계의 여과 공정과 자외선 소독 과정을 거친 뒤 냉각수 등으로 이용한다. 기존 공업용수에 비해 수질은 더 좋고 물값도 ㎥당 500원 미만으로 지금(644원)보다 싸질 전망이다. 2012년까지 1100억원이 들어갈 이 사업도 민자로 진행될 예정이다.

환경부 정복영 물산업지원팀장은 “2016년까지 전체 하수 재이용률을 19% 수준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내에서 공업용수로 재이용하는 양은 연간 1000만㎥ 수준인데, 2016년까지는 4억4000만㎥로 늘린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연간 12억4000만㎥의 하수를 재이용하게 된다.

외국에서도 하수처리수 재이용은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 하수처리수를 시민이 마시는 물로 이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미국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에서는 지난해 1월 하루 26만5000㎥ 규모의 하수 재이용 시설이 가동에 들어갔다. 4억9000만 달러(약 7000억원)를 투입한 이 사업은 하수 재이용 시설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이곳에서 정화한 물은 오렌지카운티 곳곳의 지하 관정으로 보내진다.

빈 지하 대수층(帶水層)으로 바닷물이 스며드는 것을 막는다. 1년 넘게 지하 대수층에서 자연정화 과정을 거친 물은 또 한 번 처리 과정을 거쳐 일반 가정에 공급된다. 오렌지카운티 주민의 75%가 이 물을 마시게 된다. 오렌지카운티 당국은 재이용 시설을 가동하면서 먼 곳에서 물을 끌어오는 것보다 전력을 덜 소비하고, 가뭄 걱정도 줄일 수 있어 ‘일거양득’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대우건설기술연구원 이의신 박사는 “미국 플로리다주에서는 지하수를 퍼내 쓴 뒤 빈 공간에 바닷물이 침투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하수를 걸러 채우고 있다”고 말했다. 플로리다 지역의 하수 재이용률은 2001년에 이미 50%를 넘었다.

사막이 많고 물이 부족한 호주 퀸즐랜드주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 하수처리수를 다시 걸러 곧바로 식수로 공급한다. 지난해 말 준공된 ‘웨스턴 코리도 용수 재활용 프로젝트’는 고도처리 시설 세 곳과 저수탱크 여덟 개를 200㎞에 이르는 대형 수도관으로 연결하는 사업이다. 24억 호주달러(약 2조2530억원)가 들어갔다. 이를 통해 하루에 23만2000㎥의 하수가 깨끗한 식수로 정화된다. 하수를 안심하고 마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마이크로필터 여과와 역삼투, 오존 처리 등 철저한 정화 과정을 거친다. 하수도 재처리수를 공급받는 곳은 주도 브리즈번을 포함한 동남부 지역의 250만 주민이다.

명지대 남궁은(환경생명공학과·환경부 수처리선진화사업단장) 교수는 “수돗물의 90%가 하수로 바뀌고, 하수의 60~70%를 재이용한다면 한 사람당 하루 100L의 물만 보충하면 물 수요는 모두 충당할 수 있다”며 “최근 값도 싸고 품질도 좋은 국산 마이크로필터 멤브레인(여과막)이 개발돼 국내 물 재이용이 빠르게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