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불안심리 해소 급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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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연이은 고단위의 증시안정대책에도 불구하고 주가는 회복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두말할 필요없이 신용위기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우리의 현 상황이 신용위기에 속하느냐에 대해서는 이론이 있을 수 있다.

성장.물가.고용.국제수지 등 거시경제변수로 볼 때 신용위기상황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반면 최근의 주가와 환율 등 가격변수의 움직임이 신용위기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자산가격의 하락에 따른 거품의 해소현상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을 수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고성장경제에서 저성장경제로의 전환에 따른 구조조정과 대통령선거를 앞둔 정치적 불안 등 경제외적 요인에 의한 것으로 우리 경제의 실체와 잠재력을 일시적으로 과소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국제통화기금 (IMF) 이나 외국의 주요 금융기관들도 같은 시각이다.

그러나 현재의 불안상태가 지속되거나 더 악화될 경우 신용위기로 확산될 우려가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일단 신용위기가 발생하면 그 폐해는 매우 크며 이를 수습하는 데 드는 비용은 엄청나다.

따라서 신용위기는 발생해서는 안되며 이를 예방하기 위한 장단기적인 대비책을 갖춰야 한다.

단기적인 대비책은 우선 시장의 불안심리를 해소하는 것이 돼야 한다.

개방경제하에서는 경제의 기초가 건실하다 하더라도 시장의 불안만으로 신용위기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개도국의 경우 환율이나 주가의 하락은 급격한 자본유출에 따른 외환위기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

우선 기아사태가 슬기롭게 해결돼야 하며 그 해법은 경제논리여야만 한다.

법정관리냐 화의냐는 어느 것이 회사의 재건과 금융기관을 위해 가장 유리한가를 생각하면 그 해답은 자명해진다.

기업이 파산하면 채권자가 기업의 주인이 되는 것은 자본주의의 원칙이다.

만약 금융기관경영자들이 어떠한 이유이건간에 예금자와 채권자를 위해 최선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분명한 직무유기다.

현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업의 연쇄부도를 막아야 한다.

그러나 임기응변과 함께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대책이 병행돼야 하며 그 원칙은 시장경제원리여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시장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우선 부실기업과 부실은행의 퇴출과 관련된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

부실기업에 대한 퇴출제도는 가능한 한 이해관계자간의 자율적 교섭에 의한 해결을 도모하고 정부는 자율적 교섭을 저해하는 요소를 제거해주면 된다.

부실은행의 퇴출은 국민경제에 미치는 외부성이 너무 크기 때문에 부실기업과는 다른, 정부가 적극 개입할 수 있는 특별한 장치가 요구된다.

부실 예방장치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엄정한 감독제도의 확립이 필요하고 시장규율이 작동될 수 있도록 회계제도 정비, 공시제도 강화 등 경영의 투명성을 강화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기업을 감시하고 합리적인 투자결정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금융기관의 선별기능과 자금중개기능이 강화돼야 하며 이를 위해 정치권은 현재 계류중인 금융개혁법안을 이번 회기에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

최근 대기업부도의 공통적인 특징은 사업다각화와 사업구조조정의 실패가 경기하강국면을 맞아 구체화됐다는 점이다.

무리한 비관련다각화로 주력기업까지 부실하게 하고 효율이 낮은 사업의 축소나 철수를 과감하게 하지 못하고 계열기업간의 내부보조나 상호지급보증 등을 통해 달걀품기식 경영을 한 것이 그룹전체의 부실을 촉진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에 대한 1차적인 책임은 기업들의 외형위주의 무리한 과다투자와 차입경영에 있다.

현 상황을 단순히 경기순환적인 현상으로 착각, 반전을 기대하고 구조조정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지금 학계에서는 경기변동에 관한한 경제이론을 다시 써야 한다는 소리도 있다.

현 경제의 어려움은 우리만이 겪는 현상은 아니다.

일본.동남아 등 미국을 제외한 거의 모든 나라들이 우리와 비슷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너무 불안해 하는 것 그 자체가 경제를 더욱 어렵게 한다.

강병호 <한양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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