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단 한 번의 오보에 “프로그램 폐지” 밝힌 니혼TV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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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허위 증언을 토대로 방송을 하거나, 인위적으로 증언의 핵심에서 벗어난 부분만 인용해 뉴스를 왜곡해 전달하면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곳이 일본이다.

오보 한 건 때문에 사장이 전격 사퇴한 니혼TV 사건은 이를 잘 보여준다. 구보 신타로(久保伸太郞·64) 니혼TV 사장은 16일 “오보에 대한 지휘감독 책임을 지기로 했다. 사태의 중대성을 전 사원에게 인식시키겠다”며 물러났다.

그는 시청자들에게도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며 머리를 90도 숙였다. 또 니혼TV의 보도국장이 경질되고, 담당 프로듀서와 데스크도 근신 처분을 받았다.

문제의 프로그램은 지난해 11월 23일 방송됐다. 한 증언자가 일본 중서부에 있는 기후(岐阜)현이 공사대금을 부풀려 발주하면서 비자금을 만들고 있다고 증언했는데, 제작진이 철저한 검증 없이 보도한 것이다. 고발 프로그램이어서 취재 내용을 기후현에 제시하면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 검증하지 않은 이유였다.

구보 신타로 일본 니혼TV 사장이 16일 도쿄 본사에서 오보 뉴스에 대해 사죄한 뒤 사퇴를 발표하고 있다. [지지통신 제공]

그러나 기후현 측이 방송 후 자체 진상 조사를 한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자 방송국에 항의하면서 진상이 밝혀졌다. 경찰에 체포된 증언자는 예전에도 고발성 프로그램에 허위 증언을 해주고 사례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고 아사히(朝日)신문이 전했다.

결국 방송국이 풍문으로 돌던 이야기를 보도하기 위해 결론부터 내놓고 보도하는 바람에 오보를 낸 것이다.

‘밀착 취재기자의 진상보도’라는 제목의 이 프로그램은 2002년에 시작돼 300회를 넘기면서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해온 니혼TV의 간판이다. 그러나 “(이번 프로그램은) 취재과정 전체에 걸쳐 문제가 있었다”고 밝힌 구보 사장의 말처럼 한 번의 실수로 최악의 프로그램이 됐다.

니혼TV는 보다 정확한 진상 조사가 끝나면 이 프로그램을 폐지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구보 사장의 엄격한 자기반성과 니혼TV의 철저한 책임의식은 지난해 무리한 보도로 엄청난 사회적 혼란을 일으킨 일부 한국 방송사에 ‘보도와 책임의 철칙’이 무엇인지를 깨우쳐 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김동호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