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지경부 장관은 경제 살리기 바쁜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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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한명숙 전 환경부 장관과 남궁석 전 정보통신부 장관, 이상룡 전 노동부 장관. 이들의 공통점은 뭘까.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장관직을 사퇴했다”는 점이다. 한 전 장관은 17대 총선을 앞둔 2004년 2월, 남궁 전 장관과 이 전 장관은 16대 총선을 앞둔 2000년 2월 각각 물러나 선거판에 뛰어들었다. 이 중 남궁 전 장관과 이 전 장관 등은 본인의 고사에도 불구하고 여당의 집요한 출마 채근과 대통령의 압박 때문에 ‘강제 징발’된 케이스다. 자신의 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목소리는 “여당의 승리를 위해 지명도 있는 인사가 나서야 한다”는 한마디에 묻혔다. 당시 해당 부처는 갑작스러운 장관들의 사퇴로 한동안 업무가 마비됐다.

4·29 재·보선을 한 달여 앞두고 이런 ‘징발 장관’ 명단에 또 한 명이 추가될지 모른다.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이다.

며칠 전부터 한나라당 관계자들은 ‘경제 살리기’ 취지라면서 이 장관을 인천 부평 을의 공천 하마평에 올리기 시작했다. “위기를 맞은 GM대우가 소재한 부평 을에는 경제를 잘 알고 경영 마인드가 있는 이 장관 같은 사람이 의원이 돼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지경부가 어떤 곳인가. 경제 살리기의 최전선 부처다. 국회 의석 하나 늘리기 위해 그 수장을 마구잡이로 동원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현직 장관 징발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의식한 듯 한나라당 안경률 사무총장은 19일 “(이 장관의 공천을) 본격적으로 고려해본 적 없다”고 한발 뺐다. 하지만 당내에선 이 장관 공천설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선거 때마다 정당들은 “사회 각계의 인재를 영입해야 지역이 발전한다”는 ‘외부 수혈론’을 들먹인다. 하지만 지역구 현안을 잘 알고 주민들의 진정한 지지를 확보할 수 있는 ‘현지 프렌들리’ 인물로 맞춤형 공천을 하는 게 정도다. 제자리에서 할 일을 해야 할 인재들을 흔들면 지역도 나라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번 재·보선에 민주당의 ‘징발 카드’로 거론돼온 한 전직 장관의 호소에 귀 기울여야 한다. “당에서 연락도 안 받았는데 (영입을 고려 중이란) 기사부터 나더군요. 조용히 학교에서 연구하려는 사람을 일단 흔들어놓고 보는 게 그쪽(정당)의 룰입니까.”

백일현 정치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