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고개숙인 취업 준비생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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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오전 8시 등교 - 신문채용광고 챙기기 - 토익.상식 공부 - 점심식사 - 취업보도실 방문 - D그룹 원서접수 - 귀가 - 인터넷.PC통신으로 취업정보 수집 - 원서작성 - 새벽 1시 취침' 한국외국어대 졸업반 金모 (28) 군의 일과다.

취업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난달말 이후 金군은 매일 이런 생활을 되풀이한다.

金군은 그동안 취직을 위해 많은 준비를 했다.

1년동안 영국 어학연수를 다녀왔고, 토익점수도 8백50점을 받아놓았다.

사회과학 전공으로 학점이 3.0에 못미치지만 평균치는 되는 조건이다.

하지만 金군은 최근 신도리코와 종근당의 서류 전형에서 불합격했다.

현재 3개사 서류전형 결과를 기다리고 있지만 낙관할수 없는 형편이다.

다른 취업준비생들의 사정도 金군과 비슷하다.

대부분 벌써 두세차례 낙방한 경력 (?) 이 있다.

취업전문기관인 리크루트사 집계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 대졸 구직자는 32만명. 그러나 일자리는 8만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24만명은 갈 곳이 없다.

서울 출신은 그나마 낫다.

지방대 출신이나 기 (旣) 졸업자들의 어려움은 더 심각하다.

취업재수생인 南모 (27) 군은 "취직하기가 작년보다 훨씬 힘들어져 올해도 안되면 장사를 하는 것도 생각중" 이라며 고개를 떨구었다.

모대학 지방분교 졸업반인 丁모 (27) 군은 "학점 3.44, 토익 7백30점 정도로 조건이 썩 좋지 않은 점도 있지만, 그보다 '분교출신' 이라는 점 때문에 서류전형 통과도 힘들다" 고 하소연한다.

꿈많은 젊은이들을 이처럼 고심하고 낙담케 하는 원인은 무엇보다 경기침체다.

경기가 바닥을 기다 보니 많은 기업들이 사람을 줄일 수밖에 없다.

특히 신입사원을 안 뽑거나 덜 뽑는 기업이 늘고있다.

앞으로의 전망 역시 밝지 않다.

현재 구조조정을 하고 있거나 시작할 예정인 기업들은 대부분 "내년에 경기가 좋아지더라도 전환배치등으로 기존 인력을 활용하지 신규채용자를 늘리지는 않겠다" 는 입장이다.

바로 몇달전 경기침체 여파로 40대 중년들이 명퇴 등의 명목으로 무더기로 직장을 떠난데 이어 이번에는 청운의 뜻을 펴야 할 젊은이들의 어깨가 축처지기 시작한 것이다.

취업난으로 인한 부작용도 적지 않다.

'열심히 하면 성공한다' '많이 배우면 좋은 직업을 갖는다' 는 기존의 통념이 무너지고 있다.

아예 기회가 원천봉쇄당하는 현실 때문이다.

이들이 취직해 경제활동을 함으로써 벌어들일 기회수익을 잃게 되고, 취업재수.대학원진학등에 또다른 비용을 들이게돼 이래저래 경제적 손실 또한 막대하다.

젊은 실업자를 양산하면서 우리 사회가 겪을 사회적 부담도 적지 않다.

취업난의 원인을 경기사이클에서만 찾아서는 안된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바로 대학교육의 구조적 문제다.

대졸자 수는 인문사회계와 이공계가 비슷하지만, 기업들의 인력수요는 이공계가 훨씬 많다.

인문계 졸업생이 갈곳은 점점 줄어들지만, 학생 수는 요지부동이다.

우리나라 특유의 지나친 교육열과 수요공급 원칙을 외면한 정부의 대학정책 책임이다.

그러나 당장의 취업난을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릴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기업의 인식 변화다.

기업은 신규채용을 않거나 줄이면 장기적으로 조직이 기형화될 우려가 크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정부.기업등이 공동출자해 정보통신 업종처럼 갑자기 인력수요가 많은 곳의 필요 인력을 효과적으로 양성.공급하는 기관을 운용하는 것도 검토해 볼 만하다.

취업준비생들도 차제에 눈높이를 낮춰보자. 의외로 많은 탄탄한 중소기업들이 사람을 구할 수 없다고 한다.

중소기업과 자신이 함께 크면서 나라 경제도 살찌운다는 의식전환이 필요하다.

신성식 기자 <경제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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