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고구려] 下. 시급한 남북 문화재 교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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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손님들, 횡재하셨네요."

지난달 30일 오후 3시30분 평양시 중심지인 김일성광장에 있는 조선중앙역사박물관 접대실. 중앙일보 취재단을 맞아 오전부터 박물관 전시실을 안내한 유경희 강사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한마디했다.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던 박철용 유물보존실장이 흰 장갑을 끼고 조심스레 유물 20점을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지난 몇년 새 무덤과 유적에서 발굴한 뒤 지하 수장고에 곱게 보관해온 유물이 한국 언론에 첫선을 보이는 순간이었다.

유 강사가 '횡재'라는 단어를 쓸 만했다. 이제껏 수장고에 있던 유물을 외부 손님에게 내보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최종택 고려대 교수는 "새 유물을 보면 또 다른 세계로 들어서는 듯 가슴이 설레고 긴장된다"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조선중앙역사박물관에 연구원으로 와 한 1년만 실컷 유물과 살다 가고 싶다는 최 교수다운 떨림이다.

이날 처음 나온 미공개 유물은 ^강서 태성리3호분의 토기.유리구슬.금제 대롱구슬 및 보요(장식).청동제 팔찌.관못 ^함북 신포시 오매리 절골 발굴 유적의 고구려층에서 발견된 금동판 ^평양시 대현동에서 출토된 금상감장식 철제 칼집 ^지경동 고분에서 나온 금동대롱구슬 ^상원군 소절구 유적에서 수습한 철제 보습.철제 세발솥.도기버치(토기 동이) ^평양시 용성구역 화송동 고분에서 나온 청동제 관장식 ^자강도 자성군 고구려 유적에서 출토된 쇠창(鐵矛) 등이 었다. 양은 많다고 할 수 없지만 최근 북한이 벌인 발굴 현장 보고서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을 만큼 골고루 유물을 안배한 마음 씀씀이가 느껴졌다. 고구려를 연구하는 학자에게는 하나하나가 소중한 공부 재료일 터였다.

우선 눈길을 끈 유물은 오매리 절골에서 나온 금동판이었다. 549년에 제작된 이 금동판은 불교와 관련된 발원문으로는 가장 오래되고 처음 발굴된 출토품이다. 도굴을 많이 당한 고구려 고분인지라 금(金)제품이 남아 있는 것이 별로 없지만 신라보다 오히려 화려한 금문화가 꽃핀 때가 고구려였다고 김송현 관장이 거들었다.

자강도에서 발견한 쇠창은 천년 세월을 지났어도 날이 살아 있었고, 대현동에서 수습한 금상감장식 철제 칼집은 무덤벽화에 나타나는 꽃무늬를 새겨 아름다웠다. 금상감으로 장식한 칼집으로는 첫 발굴품이라고 박철용 실장이 설명을 달았다.

30여분 짧은 눈맞춤이 끝나고 유물은 다시 수장고로 돌아갔다. 언제 다시 저것들을 볼 수 있을까, 한낮의 꿈같은 만남이었다.

평양=정재숙 기자 <johanal@joongang.co.kr>


평양시 대현동에서 출토된 금상감장식의 철제 칼집과 자강도 고구려 유적에서 나온 쇠창. 1500년 세월을 건너고도 녹슬지 않은 창날이 고구려 사람의 기상을 전해준다.


강서 태성리3호분에서 나온 금제 보요(장식)들. 관에 매달려 찰랑거리며 빛났을 작고 날렵한 그 조각 속에서 고구려가 살아온다.


함북 신포시 오매리 절골 발해 유적 고구려층에서 출토된 금동판. 불교와 관련된 발원문으로는 가장 오래된 유물이다. 평양=조용철 기자 <youngcho@joongang.co.kr>


평양 중심가 김일성광장에 있는 조선중앙역사박물관. 2005년 12월 1일 개관 60돌을 맞는다. 한국의 국립중앙박물관과 문화재 교류를 희망하고 있다.


조선중앙역사박물관 고구려실에서 발견한 ‘손잡이 달린 단지’. 몸통 윗 부분에 사신(四神)이 새겨진 희귀한 토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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