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프랑스 '역사의 빚' 뒤늦은 반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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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보르도 법정에서 진행중인 모리스 파퐁 (87)에 대한 재판을 계기로 나치의 반 (反) 유대주의에 협력했던 과거를 시인하고 사죄하는 '자성의 물결' 이 프랑스 각계로 확산되고 있다.

2차대전 당시 비시정권의 하수인으로 있으면서 1천5백여명의 유대인을 수용소로 강제송환한 혐의로 반세기만에 법정에 세워진 파퐁에 대한 '반인륜죄' 재판이 시작되기 1주일전 프랑스 가톨릭계는 비시정권이 자행한 반유대인정책에 침묵을 지켰던 '과오' 를 50여년만에 처음으로 공식 인정하고 사과했다.

이어 경찰노조.변호사협회.적십자.의사협회가 비시정권 시절 자의반 타의반으로 반유대인정책에 협력했던 잘못을 사죄하고 나서는등 때아닌 '메아쿨파' (mea culpa. '내 탓이오' 라는 뜻의 라틴어) 를 외치는 목소리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1940~44년 5년간 대독 (對獨) 협력을 바탕으로 존속했던 비시정권은 프랑스 현대사의 암흑기였다.

레지스탕스 (대독항쟁) 지도자들은 해방후 대독협력의 주역들을 단죄하고 비시정권을 서둘러 관 (棺)에 집어넣고 땅속에 묻었다.

이후 비시정권은 프랑스공화국 역사에 존재하지 않았던 무효정권이며 따라서 비시정권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프랑스가 책임질 이유가 없다는 공식입장이 확립됐다.

'영광스런' 레지스탕스운동만 요란하게 찬양됐다.

해방후 파리경찰청장과 국회의원.예산장관을 지내며 출세가도를 달려온 파퐁의 어두운 과거가 반세기만에 법정에서 낱낱이 밝혀지게 되면서 프랑스인들은 더 이상 비시정권을 외면할 수만 없는 상황을 맞고 있다.

파퐁에 대한 재판은 반세기만에 비시정권을 무덤에서 꺼내 놓고 프랑스인들이 역사 앞에 지내는 일종의 제사다.

파퐁은 제물에 불과할 뿐이다.

프랑스 현대사의 빚을 따지자면 유대인만이 아니다.

더 가까이는 1962년 알제리독립전쟁 당시 20만명의 알제리청년이 프랑스군에 끌려 와 대부분 총알받이로 사망했다.

이른바 '아르키' 들이다.

프랑스에 남아 있는 아르키들의 35년간 참았던 분노가 최근 후손들의 단식농성으로 표출되고 있다.

그들은 과거의 잘못을 인정할 것을 프랑스에 요구하고 있지만 프랑스정부는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늙고 병든 노인 파퐁에게 법정최고형을 선고하면서 프랑스인들이 역사에 진 빚을 다 갚았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위선 (僞善) 일 가능성이 크다.

역사에 진 빚에는 공소시효도 없지만 차별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배명복 <파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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