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 '하향 구직' 도미노…고졸자 "우린 어디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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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인천직업전문학교 취업담당 安모 (40) 주임은 요즘 걱정이 태산이다.

예년의 경우 9월부터 밀려들기 시작하던 구인신청서가 올해는 아예 끊기다시피해 내년 2월 졸업예정자들의 취업이 막막하기 때문이다.

安주임은 "9일 현재 접수된 구인신청서가 10여건에 불과해 지난해 10월말 1백여건의 10% 수준에 그치고 있다" 며 "경기불황으로 기업체 채용규모가 크게 줄어든데다 생산직에도 몰려드는 대졸자들로 인해 고졸수준의 구인신청이 급감하고 있다" 고 말했다.

K대 법대대학원을 96년 졸업한 李모 (32) 씨는 얼마전 전자게시판 제조업체인 중소기업 S사에 입사원서를 냈다.

여러 기업체에 원서를 냈으나 번번이 취업에 실패한 李씨는 연봉 1천2백만원인 고졸대우 영업직에 지원,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같은해 S대 행정학과 졸업후 1년여동안 해외어학연수까지 다녀온 韓모 (28) 씨는 지난주 소규모 무역회사인 S트레이딩에 입사원서를 냈다.

韓씨는 "회사에서 전문대졸 대우임을 여러번 강조한 뒤 원서를 접수하더라" 며 씁쓸하게 웃었다.

대졸자 취업경쟁이 대란 (大亂) 으로 불릴 만큼 치열해지자 대졸자들이 전통적으로 고졸자 몫으로 여겨졌던 자리에 대거 몰려드는 '하향취업' 에 나서고 있다.

이로 인해 고졸자들에게 '취업난 도미노현상' 도 일고 있다.

서울시가 10일 실시하는 9급 지방공무원 시험엔 9백53명 모집에 3만6백여명이 지원, 지난해 13.1대 1의 3배에 가까운 37.8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서울시는 지원자 가운데 대졸자가 90% 이상이며 합격자 대다수도 이들이 차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광주시가 지난 7월 9급 지방공무원을 공개 채용한 결과 지난해에는 전문대 졸업자가 한명뿐이었던 소방사 운전자직에 합격한 25명 가운데 대졸자가 7명, 전문대 졸업자가 6명이나 됐다.

일반 행정직도 합격자 62명 가운데 80%인 50명이 대졸자였다.

경찰청이 지난 6일 발표한 하반기 순경공채시험 합격자 8백60명 가운데도 대졸자가 27%, 전문대 졸업자가 38%를 차지했다.

대졸 택시운전기사도 급증하고 있다.

서울시택시운송사업조합 통계에 따르면 9월말 현재 서울시내 운전기사중 대졸자는 9백9명으로 이는 지난해 9월말 7백25명보다 25% 이상 증가한 것이다.

LG경제연구원 김성식 (金聖植.38) 책임연구원은 "교육제도가 산업계의 인력수요와 변화된 사회환경을 따라가지 못해 적재적소에 인력공급을 하지 못하는게 하향취업 현상의 근본 원인" 이며 "이같은 추세는 올해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상당기간 이어질 것" 이라고 우려했다.

최재희·정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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