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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 “지금 무인도에 떨어진 느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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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올 1월 초 서울중앙지검에 긴급 체포됐던 미네르바 박대성씨의 모습. [박씨 측 제공]

‘미네르바’ 박대성(31)씨는 “그동안 매트릭스(컴퓨터가 지배하는 가상현실) 구조에서 사육당하고 있었다는 느낌이 든다”고 밝혔다. “어떤 시대정신을 갖고 있는가에 대해서도 스스로 자각을 할 수 없는 심정”이라고 했다. 자신의 변호를 맡고 있는 박찬종 변호사를 통해 13일 이뤄진 본지와의 두 번째 서면 인터뷰에서다. 첫 번째 인터뷰(본지 1월 23일자 2면)에서는 “온라인상에서 참고하라고 글을 쓴 것뿐인데, 시끄러워져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번 인터뷰에서 박씨는 또 “인터넷 공간에서 익명성의 자유를 누리는 정도는 보장돼야 한다”며 “나는 죄가 없다고 믿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얼굴을 숨겨야 할 이유가 없다”며 본지가 자신의 얼굴 사진을 공개하는 것에 동의했다. 수감 생활을 끝낸 뒤에는 글을 계속 쓰겠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인터뷰 형식으로 정리한 박씨와의 일문일답. (※부분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

- 재판을 앞둔 심정은. (※17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처음으로 피고인 심문 과정이 포함된 재판이 열린다. 지금까지는 재판 진행을 위해 검찰과 변호인 측이 협의하는 절차를 거쳤다)

“한마디로 비참하다. 수감된 지 60일이 넘었다. 내가 경제 애국주의에 희생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모든 것이 경제를 위해 희생돼야 한다는 논리 때문에 내가 이런 고통을 받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자신의 행동에 후회하는 부분은.

“인터넷 공간에서 익명성의 자유를 누리는 것이 죄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런 정도의 표현의 자유는 당연히 보장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터넷 없는 세상은 어떤 느낌인가.

“지난 10년 동안 인터넷 네트워크로 정보를 교류하고 살아왔다. 교도소에 갇힌 이후 갑자기 무인도에 떨어진 것 같다. 여태껏 내가 매트릭스 구조에서 사육당하고 있었다는 느낌도 든다.”

-미네르바라고 쓰게 된 계기는.

“고등학교 때 서점에서 미네르바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지혜의 여신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발음이 매끄러워 필명으로 쓰게 됐다.”

-요즘엔 무엇을 읽고 있나.

“안토니오 그람시(※이탈리아의 마르크스주의 사상가) 전기,『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등을 읽었다. ”

-수감 생활을 마친 뒤에는 다시 인터넷에 글을 쓸 계획인가.

“ 간섭 받지 않고 질 높은 글을 집중적으로 쓰고 싶다. 그런데 그런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이 보장될 수 있을지, 거기에 생각이 미치면 답답하다.”

-월간지 신동아가 진짜 ‘미네르바’가 따로 있다고 보도한 것에 대해 사과했다. 신동아에 할 말은 없나.

“K씨(※신동아가 진짜 미네르바라고 주장했던 인물)의 정체를 분명히 밝혀주길 바란다. 내가 가짜로 지목되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재판부에 하고 싶은 말은.

“ 객관적이고 중립적 입장에서 모든 것을 판단해 주리라고 믿는다.”

- ‘미네르바’를 옹호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은가.

“국가가 개인 을 끝까지 지켜주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모든 분이 ‘경제적 자각’을 해 이 어려운 때 스스로를 지키도록 노력하길 바란다.”

박유미 기자

미네르바 사건 일지

- 2008년 3월 인터넷에 첫 글 게시=포털사이트 다음의 토론방 아고라에 미네르바라는 필명으로 금융위기 등과 관련한 글 올려

-7~9월 미네르바 글에 관심 커져=한국판 서브프라임 위기와 리먼브러더스 사태 등을 예측하면서 화제. 특히 산업은행이 리먼브러더스 인수를 시도하는 것과 관련해 “인수하면 부실자산 500억원 이상을 떠안아야 한다”고 위험성을 경고. 미네르바 실체 놓고 논란

- 11월 3일 수사 촉구=“사정 당국이 조사해야 한다”는 한나라당 홍일표 의원의 주장에 김경한 법무부 장관은 “범죄 구성 요건 되면 당연히 수사한다”고 답변. 미네르바 11월 13일 절필 선언

- 12월 29일 허위사실의 글 게재=“정부가 긴급 업무명령을 통해 금융기관 등에 달러를 사들이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주장. 기획재정부 “사실무근”이라고 반박. 검찰 수사 착수

- 2009년 1월 7일 검찰, 박대성씨 긴급체포=서울중앙지검, 박씨의 서울 창천동 집에서 인터넷상의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체포. 미네르바 실체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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