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박기원씨 등 '구름(Rolling Space)'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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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 전시장 벽과 천장을 노랑 비닐로 감싸 공간을 발가벗긴 박기원씨의 ‘더운 방’에서 김호득씨의 검고 흰 한지가 하늘거리며 관람객의 몸과 마음을 구르게 한다.

덥다. 전시장 이름도 '더운 방'이다. 단촐하게 벽과 천장을 감싼 노란 비닐이 더위를 부채질한다. 박기원씨의 작품 '더운 곳'은 잔잔하게 흔들리는 투명 비닐로 공간을 보여준다. 미술관이 모처럼 알몸이 됐다. 사람으로 치면 육체미가 드러난 셈이다.

23일부터 7월 31일까지 서울 동숭동 마로니에 미술관에서 열리는 '구름(Rolling Space)'은 우리가 평소에 잊고 사는 공간을 느끼게 해주는 전시다. 관람객이 공간을 알고 반응하면서 함께 구르기를 권한다. 굴러가면서 공간이 바뀌고 사람도 변한다. 눈을 크게 뜨고 몸을 열고 구르면 세상은 이렇게 신기하고 신나는 곳이라고 건축가와 미술가가 합창한다.

박기원씨의 비닐이 널찍하게 드러낸 공간을 거닐면 천장에서 뻗어나온 열두 자락이 하늘하늘하다. 화가 김호득씨의 '흔들림, 문득'이다. 먹과 한지가 이룬 공간이 우리 몸을 흔든다. 설치미술가 박상숙씨는 전시장에 전통 한옥의 방구들을 놓았다. 온돌이 아니라 찬돌이다. 더위를 식히는 아랫목이라니.

제2 전시실에는 들머리부터 안쪽 벽까지 나무마루가 깔려 있다. 사뿐사뿐 걷고 싶어진다. 건축가 헬렌주현박이 손님들을 부르는 손짓이다. 김미형씨가 바닥에 깔아놓은 구멍 뚫린 낙엽은 숨쉬는 허파 같다. '제부도'에 갔던 추억을 관람객과 나누고 싶어 안달하는 화가 최진욱씨는 섬을 바라보고 즐긴 시점과 관점을 공간을 조각내며 그림 더미로 재현했다. 김을.김준성.윤웅원.임민욱과 프레데릭 미숑이 공간을 요리한 솜씨도 맛깔스럽다.

한국 사람에게 공간은 뭘까. 7월 7일 오후 3시 마로니에미술관 3층 세미나실에서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를 초청해 여는 주제강연 '공간의 구성:깊이의 기하학과 지각'이 궁금증을 풀어준다. 02-7604-724.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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