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정진홍의 소프트 파워

“얼굴들이 돌아오게 하소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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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마침,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유섭 카시와 몇몇 한국 작가들의 사진전에서 바라볼 얼굴, 존중할 얼굴, 어루만질 얼굴을 새삼 마주할 수 있었다.

# 바라볼 얼굴=카시가 1956년에 찍은 오드리 헵번의 얼굴은 정말 매혹적이다. 속눈썹을 길게 드리운 채 지긋이 감은 눈에는 마치 우주가 담긴 듯하다. 오똑한 콧날은 더없는 자존감을 드러내 보이고, 짙게 그려진 눈썹과 단아하게 빗겨진 머리는 범접하기 힘든 여신의 도도함과 순진한 처녀의 청순함이 묘하게 뒤섞여 조화를 이룬다. 얼굴의 윤곽선과 입술 , 그리고 이어진 귀의 선은 그 자체가 깎은 듯한 조각이요, 예술이다. 심지어 옷깃으로 감춰진 목선까지도! 그 얼굴을 바라보노라면 누구나 울렁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빠져들게 마련이다. 하지만 어느새 마음속의 욕망은 숨을 죽인 채 순백의 오롯한 정화를 체험하게 된다. 그녀가 말년에 아프리카의 병들고 굶주린 아이들을 헌신적으로 돌보았던 장면이 오버랩돼 더욱 그렇다. 정말 바라보면 볼수록 고귀하고 아름다운 얼굴이다.

# 존중할 얼굴=역시 카시가 1941년에 찍어 ‘라이프’지 표지에 실었던 사진에서 마주하는 윈스턴 처칠의 얼굴은 제2차 세계대전에 임하는 그의 단호한 의지가 그대로 담겼다. 적당히 찌푸린 미간은 유난히 빛나는 눈빛과 어우러져 절체절명의 위기를 헤쳐 나갈 분명한 방향과 흔들림 없는 시선을 드러내 보인다. 선 굵은 콧날과 굳게 다문 입은 더할 수 없는, 불굴의 의지를 담고 있다. 히틀러의 총공세 앞에 “결코, 결코, 결코 항복하지 말라”는 처칠의 단호한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정말이지 그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포기란 있을 수 없고, 좌절은 죄악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패배감을 떨치고 승리를 만든 얼굴이기 때문이다. 당시 영국인들은 처칠의 얼굴을 보며 불안을 떨치고 미래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얼굴은 믿고 따르며 존중할 얼굴이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아쉬운 것이 그런 얼굴 아닐까.

# 어루만질 얼굴=카시의 작품들과 함께 전시된 한국 작가들의 작품 중 젊은 작가 김동욱이 2002년에 찍은 고(故) 피천득 선생의 얼굴은 삶의 기억들을 애써 더듬으며 어루만지고 있었다. 검은 뿔테 안경 너머로 살포시 감은 눈에는 회한이 드리워져 있었고, 검버섯 핀 얼굴은 고단했던 삶의 역정을 결코 감추지 않았다. 깊게 파인 이마의 주름과 애써 정갈하게 깎아낸 코 밑의 수염은 힘겨웠지만 그래도 지켜온 삶의 자존감 같은 것을 느끼게 만든다. 그리고 그런 얼굴 위에 살며시 얹힌 주름 많은 손끝은 자신의 지나온 삶을 연민 속에 어루만지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평생 세 번 마주했던 아사코와의 인연을 떠올리며 애써 어루만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 다음 주 월요일부터 본지의 판이 바뀐다. 신문은 말 그대로 세상을 보여주는 창(窓)이다. 그 창이 바뀌는 것이다. 하지만 창의 크기와 형태만 바뀌는 것이 아니다. 그 창을 통해 비춰질 콘텐트가 바뀌는 것이다. 신문은 ‘하루의 호흡’이다. 이 칼럼은 ‘일주일의 호흡’이다. 물론 우리의 삶은 ‘더 긴 호흡’을 요구한다. 그런 삶의 호흡을 위해 ‘정진홍의 소프트파워’라는 작은 창은 더 새롭게 바라볼 얼굴, 존중할 얼굴, 어루만질 얼굴들을 발굴해 펼칠 것을 약속한다. 우리의 세계가 더 풍성히 존재하도록!

정진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