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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T엔 ‘어른 유치원’ 있다는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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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우리는 미래에 무엇을 공부할 것인가
김광웅 엮음, 생각의 나무, 436쪽, 2만원

최첨단 연구소에선 실험실보다 화장실과 복사실이 더 중요하다? 실제로 미국의 주요 설계 사무소들은 최신 연구소를 디자인할 때 복도·화장실·카페 등의 배치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인다고 한다. 그 공간들은 사람이 만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실험실을 벗어난 자연스런 만남 속에서 지식의 교환과 융합이 이뤄진다. 지식이 분과 학문의 경계를 ‘횡단’할 때 새로운 무엇인가가 탄생하는 것이다.

세계 최고의 ‘아이디어 공작소’ MIT의 미디어랩 지하 1층에는 ‘유치원’이 있다. 연구원의 아이들을 돌봐주는 곳이 아니다. ‘라이프롱 킨더가튼(Lifelong Kindergarten)’. 굳이 번역하자면 ‘평생 유치원’이다. 이곳에선 연구원 자신이 ‘유치원생’이 된다. 유치원 이후로는 지식만 배울 뿐 창의력은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란다. 이 ‘놀이터’에서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만들어진다.

‘우리는 미래에 무엇을 공부할 것인가’. 책은 ‘창조사회’의 학문과 대학에 대해 묻는다. 지금의 세분화된 분과 학문은 ‘쇠 우리(iron cage)’에 갇힌 수용소와도 같다. 과학자와 행정학자, 미대·음대 교수와 현직 언론인까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12인이 ‘미래 학문’을 향한 도전과 과제를 논했다.

2차 대전 중 군사용 레이더 기술을 개발한 미국의 연구소는 음악가도 연구원으로 뒀다. 레이더 신호 감지 기술에서 ‘음학’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대장간에서 쇠를 두드리는 소리를 듣다가 ‘음계’를 수학적으로 정리했다는 피타고라스의 일화를 떠올리게 한다. 경계를 넘나드는 융합형 학문의 미래는 오히려 과거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스위스 베른의 특허국 직원이 만들어낸 특수상대성이론도 그렇다. ‘시간’에 대한 개념을 혁명적으로 뒤집어 놓은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그가 시계에 대한 특허를 심사했던 경험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물론 그는 전문적 교육을 받은 과학자였지만 창조적 이론은 연구실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책은 단순히 학문간 ‘융합’과 ‘통섭(統攝)’이라는 시대의 유행어를 전하려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교육 제도가 혁명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고교 때부터 ‘문과’와 ‘이과’를 갈라놓고 입시 전쟁을 치르는 한국의 학제가 문제다. 10대 중반부터 ‘과학도’와 ‘인문학도’를 나눈 그 ‘전문화’가 한국의 학문을 얼마나 발전시켰을까.

배노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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