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서 서점가 돌풍 천기누설인가 혹세무민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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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

"이처럼 폭발적인 인기를 얻을지는 몰랐다. "

요즘 서점가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예언서들을 출판한 담당 편집자.영업자들의 한결같은 반응이다.

더욱이 예측불허의 대선 (大選) 정국도 한몫 하고 있다.

교보문고 이관종 조사과장은 "하반기들어 역학.점술서들의 매출이 상반기보다 10~20% 가량 늘었다" 고 말한다.

장기불황.정치불안에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훈훈한 이야기, 명상.수신서들이 올초부터 인기를 끌더니 최근 불확실한 미래를 밝혀준다는 예언서들이 주가 (株價) 를 올리고 있다.

특징은 전통적인 예언서와 달리 '현대적인 치장' 으로 독자에 대한 설득력을 높이려 한 점. 최근 화제를 몰고 온 책은 '바이블 코드' (황금가지刊) 와 '원효결서' (전2권.화산문화) .두 권 모두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는' 내용들을 담고 있다.

발간 두 달만에 12만여부가 팔린 '바이블 코드' .미국 일간지 기자였던 마이클 드로스닌이 성경 속에 감춰진 비밀을 찾아내며 2차대전 발발, 라빈 총리 암살, 클린턴 당선 등을 알아냈고, 인류 최후의 핵전쟁도 경고하고 있다는 책이다.

구약성경 히브리어 원문을 띄지 않고 이으면 가로.세로.대각선 방향으로 여러 사건의 발생을 점칠 수 있다는 것. 미국 전문학술지에 방법론이 소개될 만큼 과학적 분석도 내세운다.

6.3세대인 김중태씨의 '원효결서' 는 우리 역사를 파고든다.

출간 한 달여만에 3만여부가 나갔다.

신라 고승 원효대사 (617~686)가 남긴 문서가 지난 67년 경주 앞바다 신라 문무왕 수중릉에서 발견됐었다는 주장과 함께 '놀랄만한' 내용을 공개한다.

저자에 따르면 원효대사는 총4백64자의 이 결서에서 고려.조선의 개국, 3.1운동과 6.25, 김영삼 대통령의 운명까지 다루고 있다는 것. 또한 오는 대선의 승패와 관계없이 차기정권은 과도정부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짚었다.

이번주 출간될 '추배도 (推背圖)' 는 중국 당 (唐) 나라 때 금서 (禁書) 로 묶인 '추배도' 를 통해 한국 정치사의 궤적을 추적한다 (동연) .삼국통일.임진왜란.경술국치는 물론 박정희 시해.김일성 사망 등이 올라 있다.

갑자 (甲子) 부터 계해 (癸亥) 까지 육십갑자에 주역 괘와, 독특한 그림, 그리고 한시 (漢詩) 로 구성된 '추배도' 에 주요 인물들의 생년 (生年) 을 대입하면 과거와 미래가 보인다고 한다.

특히 올 대선에선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가 당선될 괘가 있으나, 차기 통수권자는 2년 이내의 '징검다리' 대통령이 되며 이후 내각제가 자리잡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직 신문기자인 노성호씨가 풀이했다.

한편 이 책들은 종전 예언서들이 주로 내용이 애매한 역학.점성학서인 반면 나름의 자료를 토대로 과거.미래의 주요 사건을 객관적으로 접근하려는 공통점을 보인다.

공교롭게도 동양.서양, 그리고 한국의 예언서라는 점이 흥미롭다.

그러나 심리학자들은 내용의 정확성과 상관없이 예언서들의 인기를 우리의 어지러운 사회현실에서 찾고 있다.

사회심리학자 최창호씨 (중앙대 강사) 는 "예언서의 기승은 학술적으로 '공정세상관' 의 붕괴, 즉 원칙과 규칙이 사라진 세상에 대한 불만의 표시" 라고 진단했다.

또한 세기말에 대한 불안이 이런 분위기를 부추기고 있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이런 예언서들이 '천기누설' (天機漏泄) 인지 '혹세무민' (惑世誣民) 인지는 결국 독자들의 마음가짐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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