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대역사]3.카스피해 유전개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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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카스피해의 염분을 실은 무더운 바람을 맞으며 바쿠시로 들어서면 매캐하면서도 약간은 부패한 듯한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석유를 정제하면서 만들어지는 가스등 부산물의 냄새다.

역사책에는 기원 직후부터 기록이 나타난다고 하는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의 공항은 아제르바이잔이 현지어로 '불의 나라' , 즉 부의 상징인 석유의 고장임을 의미함에도 이를 연상키 어렵게 만들 정도로 지저분하고 초라하다.

석유를 찾는 메이저들의 발길이 줄을 이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공항과 시내로 진입하는 길 주변은 그저 독립후 가난에 시달리는 여느 독립국가연합 (CIS) 소속 한 나라의 모습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그런 느낌은 잠시. 바쿠시내.교외를 잠시 달려보면 카스피해와 석유의 관계가 더할 나위없이 실감난다.

해안엔 바다에서 캐낸 석유를 육지로 수송하는 크고 작은 파이프 라인들이 육지를 향해 죽 뻗어있었고, 사막성 황토를 가로지르거나 옆으로 끼고 달리는 도로 옆에는 석유를 캐는 펌프들이 무심하게 아래 위 고갯짓을 하고 있었다.

"중동석유와 어깨를 겨룬다.

" 카프카스 (영어명 코카서스) 지역의 벌판과 산악을 가로지르며 울리게 될 건설의 망치소리는 바로 그런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카프카스의 송유관 사업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바로 이 지역의 석유다.

아제르바이잔 국영석유회사 소카르사의 라피그 압둘라예프 (51) 사장수석보좌관은 송유관 사업에 대해 물어보자마자 이렇게 말한다.

"유럽으로 석유를 수송하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석유의 생산입니다.

" 우선 아제르바이잔만을 대상으로 보자. 압둘라예프는 카스피해의 아제르바이잔 해역에 약 3백억배럴의 석유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이 가운데 약 1백80억배럴을 개발하기 위해 9차에 걸쳐 메이저들의 다국적 컨소시엄이 형성돼 있다.

송유관사업에 이해를 갖고 있는 카스피해 연안 국가는 물론 아제르바이잔만이 아니다.

카스피해를 가로질러 자리잡고 있는 카자흐스탄.투르크메니스탄이 그들이다.

카자흐스탄은 석유에 관한한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나라다.

현재 석유를 퍼올리고 있는 텡기스 유전의 매장량은 최대 90억배럴. 카스피해의 카자흐스탄 해역에는 텡기스보다 2배나 큰 구조가 발견됐다.

투르크메니스탄도 만만치 않다.

원유 추정매장량은 5백억배럴, 천연가스는 2.9조입방m가 매장돼 있다.

이 지역의 총 원유 매장량은 아제르바이잔이 추정하기론 7백70억배럴이지만 다른 경로로 나오는 추정치는 쿠웨이트 매장량에 가까운 2천억배럴이다.

세계 8위의 매장량이고, 그래서 '뉴 쿠웨이트' 라고 불린다.

조사가 더 진행될수록 얼마나 늘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문제는 내륙에 파묻힌 이들 나라의 석유를 어떻게 밖으로 내보내느냐다.

송유관의 문제가 관심을 끄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이 문제를 놓고 지난 92년부터 벌어진 보이지 않는 각축은 조금씩 결과를 낳고 있다.

아제르바이잔.카자흐스탄 두 나라는 러시아와 세계 석유메이저들의 중개로 석유개발.송유관 건설사업에 전진을 이뤘다.

아제르바이잔 국영석유회사 소카르는 두가지 계획을 실천하고 있다.

1안은 카스피해와 인근 연안에서 개발될 일부 석유를 카프카스의 벌판과 산악을 거쳐 흑해로 수송하는 안. 2차 파이프 사업도 이미 지난 4월부터 건설이 시작됐다.

그루지야를 거쳐 아프하스의 숩사항까지 연결되는 총연장 9백17㎞의 사업이다.

아제르바이잔은 기존의 4백70㎞ 파이프를 개.보수하면 되지만 그루지야는 완전히 새로운 파이프를 설치해야 한다.

카프카스 지역의 송유관 지도를 새롭게 만들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은 카자흐스탄 텡기스 유전의 석유다.

텡기스 유전의 원유는 기존 라인을 따라 러시아의 카스피해 연안 도시인 콤소몰스카야를 거쳐 내륙의 크로포트킨을 통해 노보로시스크 항구로 모였다가 유럽으로 나가게 돼 있다.

기존 송유관이 있기는 하나 이는 바쿠에서 오는 송유관과 연결돼 있어 물량을 당해내지 못한다.

따라서 콤소몰스카야로부터 크로포트킨을 거쳐 노보로시크항으로 가는 송유관을 신설하는 계획이 확정됐다.

성격은 조금 다르지만 투르크메니스탄도 절대로 가볍게 볼 나라가 아니다.

천연가스가 엄청나게 생산되는 이 나라는 3개 파이프 라인과 1개 원유 파이프 라인 건설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투르크메니스탄의 남부를 거쳐 터키를 지나 유럽으로 수송하는 가스 파이프 라인 계획은 총연장 1천4백70㎞다.

투자비만해도 25억달러가 들어가는데 97년말이면 완공할 예정이다.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을 거쳐 인도양으로 나가는 총연장 1천3백70㎞의 송유관,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중국을 거쳐 일본으로 나가는 총연장 6천2백50㎞의 송유관을 건설하는 사업도 야심차게 추진되고 있다.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이란으로 나가는 총연장 6백85㎞, 10억달러규모 사업도 현재 검토중이다.

카스피해의 송유관들이 모두 완성돼 검은 보석들이 본격적으로 흐를때쯤이면 국제 원유시장의 판도도 새롭게 바뀔 것이다.

바쿠 = 안성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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