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게 즐겁게]두부요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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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두부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저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있을뿐, 오히려 무미건조한 맛이지만, 아무리 편식을 하는 사람들도 이를 마다하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어려서부터 길들여진 맛이기 때문이다.

20여년전, 이북으로 북송된 일본인 처가 자신의 조국인 일본의 부모에게 보낸 편지 묶음을 편집해서 내가 주관하는 잡지에 실린 일이 있었다.

그 가운데 잊혀지지 않는 구절이 "두부가 먹고 싶다" 한 그것이다.

요즘도 북한의 식량 사정은 여전한 듯 하지만, 어찌됐든 그 시절에도 두부 조차 마음대로 먹을 수 없는 것이 북한의 실정인가 하고 안타깝게 여겼었으며, 그 두부 맛을 못보면, 모처럼의 부모님에의 하소연이 될 수 있는가 싶어 자못 놀랬었다. 나도 어려서부터 두부 맛에 길들어 왔기 때문에 만약 이를 취할수 없게 된다면 같은 하소연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나의 어린 시절, 우리 집에서는 두부나 비지가 식탁에서 거르는 날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한때 4대가 한 울타리안에서 집거를 하고 우리 7남매 외에 4촌과 8촌에다 식객이 항상 들끓었던 대종가 집이었다.

워낙 대 식솔인데다가 식자재가 풍족치 못한 시절이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아무튼 고추장찌개든 된장찌개든 아니면 새우젓찌개든 반드시 그 하나는 상에 올랐고, 여기에 반드시 두부가 들어갔다.

새벽에 종소리를 울리며 두부장수가 나타나면 아낙네들이 바가지가 아닌 큰 양푼을 들고 나가 두부 한 두 모가 아닌 양푼 가득히 사 들였고, 덤으로 한 두 덩어리의 비지를 받곤 했다.

그 많은 양이 아니면 그 대식구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쇠고기 몇점이 들어간 두부찌개는 아이들의 몫은 되지 못했다.

칩칩한 (치사한) 얘기가 될는지 모르지만, 그런 맛있는 두부찌개는 으레 할아버지나 아버지, 식객들 상에만 올랐고 아이들이나 부녀자 상에는 김치를 송송 썰어 넣은 비지찌개 따위가 고작이었고, 거기에 돼지고기 몇점이 들어가면 대성찬이 되었다.

워낙 봉건적인 집안이어서 아버님과 식사를 함께 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고, 요행으로 어쩌다 할아버지와 손자는 겸상으로 맛을 즐기는 경우가 있었다.

이때야 비로소 맛있는 두부찌개며 고작 쇠고기 몇점 다져 넣은 계란찌개, 돼지고기와 두부가 들어가고 새우젓으로 간을 한 돼지고기볶음 따위를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조차 자주 손이 뻗으면 어머님의 눈총을 받아야 했고, 몰래 다가와서 툭툭 치시기까지 했다.

이런 서러운 (?) 어린 시절을 가졌었기 때문에 어머님이 끓여 내는 고추장찌개 (두부찌개) 며, 새우젓으로 간을 한 돼지고기볶음 따위를 먹어 보고 싶다.

이런 어린 시절의 향수가 있기 때문인지 두부며 비지의 맛을 잊지 못하고, 서울의 뒷골목이나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고 다니면서 두부 맛이 좋다고 하면 기어이 그집을 찾아가서 시식을 했다.

그 가운데서 인상에 남는 두부전문점을 간략하게 소개해 보겠다.

식도락기행 초기무렵부터 맛을 익혀온 전북 완주의 '원조화심생두부' 와 '화심순두부' 며, 강릉 초당두부의 원조 '초당할머니순두부' , '소문난집 순두부' 와 속초의 순두부 원조 '김영애할머니 순두부' 집, 인제의 '백담순두부' , 군산의 '감나무집' , 포천 두부촌마을의 '청기와집' 등이 더없이 부드럽고 구수한 두부를 내 놓고 있다.

그 어느집이나 손수 자가에서 제품을 만들고 있고, 수입콩이 아닌 국내산콩을 엄선해서 쓰고 있기 때문이다.

예부터 서울에 두부집이나 두부공장이 없을 수 없었겠으나 최근 들어 자연산 건강식품을 찾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경향 도처에 그 전문점이 부쩍 늘어가고 있다.

그 가운데서 두부가 더 없이 고소해서 따로 양념장을 치지 않아도 되리만큼 고소하여 그 품질이 우수한 집이 많다.

잠실본점과 역삼점을 위시하여 6개소의 지점을 갖고 있는 '두부촌' , 태릉에 있는 10여년 역사의 두부요리전문점 '제일식당' 과 나자신이 북한산 하산길에 항상 들르게 되는 두부찌개와 비지찌개가 입맛에 맞는 '옛날민속집' , '할머니손두부집' 등은 두부요리전문점으로 내세울만한 집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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