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학살 협력 프랑스 마지막 전범 법정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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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협력한 프랑스의 '마지막 전범' 모리스 파퐁 (87)에 대한 프랑스 법원의 역사적 심판이 오는 8일 반세기만에 시작된다.

비시정권에서 지롱드 지방 경찰차장으로 일하며 1천5백60명의 유대인을 나치수용소 독가스실로 강제송환한 혐의로 기소된 파퐁에 대한 반인륜죄 적용 여부를 가리기 위한 공판이 이날부터 보르도 중죄법원에서 열린다.

이번 재판은 개인에 대한 법의 단죄라는 차원을 넘어 프랑스 역사의 부끄러운 얼룩을 도려냄으로써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여론의 지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프랑스가 나치에 협력한 자국인을 반인륜죄를 걸어 법의 심판대에 세우기는 르네 부스케와 폴 투비에에 이어 이번이 세번째다.

비시정권의 경찰총장을 역임했던 부스케에 대한 판결은 지난 93년 재판도중 그가 암살되는 바람에 무산됐고 유대인 7명을 총살한 혐의로 94년 종신형을 선고받은 투비에는 비시정권의 하급장교에 불과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재판은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협력한 비시정권에 대한 법의 처음이자 마지막의 본격적인 단죄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파퐁은 해방후 드골정권에서 파리 경찰청장을 거쳐 하원의원과 예산장관을 지내는등 출세가도를 달려왔다.

지난 81년 나치에 부역한 사실을 입증하는 문건이 한 언론에 의해 폭로되지만 않았어도 그는 '국민의 공복' 으로 여전히 존경을 받았을 것이다.

바로 이런 사실들은 이번 재판을 지켜보는 프랑스인들을 착잡하게 만들고 있다.

파퐁은 지난 83년 유대인 희생자 가족과 단체의 고발에 따라 정식기소됐으나 사법처리가 계속해서 지지부진한 상태에 머물러 왔다.

그러나 95년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중 처음으로 비시정권의 유대인 강제송환 협력사실을 공식인정하고 국가의 이름으로 사죄하면서 단죄 분위기가 조성됐다.

지난해 9월 보르도 항소법원은 기소 13년만에 그를 재판에 회부하는 결정을 내렸다.

파퐁은 "나는 상부의 지시에 따라 움직인 힘없는 관객에 불과했다" 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프랑스 가톨릭계가 유대인 학살에 '비겁한 침묵' 을 지켰던 과오를 반세기만에 공식사죄하는등 뒤늦게 역사의 오욕을 바로잡자는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어 파퐁은 준엄한 역사의 화살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파리 = 배명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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