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힐러리를 취재한 적 있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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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숙명여대 정보방송학과 3학년 윤지애(21)씨는 ‘엄친딸(엄마 친구 딸이라는 뜻으로, 경력이 화려한 학생을 일컫는다)’로 통한다. 지난해 7월부터 올 1월까지 미국 플로리다의 디즈니월드에서 인턴으로 일했기 때문이다. 마케팅·커뮤니케이션·관광산업 전공 학생이 현장 경험을 쌓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숙명여대가 플로리다주립대와 공동으로 만든 덕분이다. 윤씨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회사에서 인턴을 해서 취업에 자신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2. 컨설턴트를 꿈꾸는 김태민(26·연세대 전기전자공학부 4년)씨는 인턴십을 위해 기업에서 면접을 볼 때마다 ‘정말 힐러리 클린턴을 만났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2007년 어학연수 기간 중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학보사 사진기자로 활동한 그는 당시 필라델피아를 방문한 클린턴 미국 대선 후보, 영화배우 톰 행크스 등 저명인사들을 취재했다. 김씨는 “면접 때 ‘클린턴’이라는 이름 덕분에 좋은 점수를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금융위기 이후 취업난이 심해지면서 대학생들이 이력서에 ‘취업 키워드’를 올리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취업 키워드는 이력서에서 다른 사람과 차별화되는, 특별한 경력이나 활동을 말한다. 해외에서 봉사활동을 하거나 유명 기업에서 인턴십을 하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1학년 때부터 취업 키워드를 위해 나서는 경우도 많다. 연세대 아동가족학과 2학년 김경원(20·여)씨는 지난해 말부터 신한은행의 대학생 홍보대사로 활약하고 있다. 그는 “인턴십·아르바이트·해외봉사단 등의 활동을 할 때 공신력 있는 은행에서 일한 게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 같아 홍보대사 활동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송지영(22·숙명여대 법학과 4년)씨도 1학년이던 2005년 전경련에서 후원하는 경영 동아리 YLC(영리더스클럽)에서 활동했다. 송씨는 “전경련이란 이름 덕분인지 2007년에 참가한 해외 탐방 봉사단 면접에서도 ‘전경련에서는 무슨 활동을 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반면 취업과 연관성이 적은 순수예술이나 시사평론, 역사 동아리의 회원은 갈수록 줄어든다. 전통문화를 연구하는 대학연합동아리 한국문화표현단의 양병민(23·단국대 전기공학과 2년) 회장은 “2~3년 전만 해도 학기마다 지원자가 50명을 넘었는데 이번 학기에는 지원자가 20명 수준”이라고 말했다.

해외 대학생들도 취업 키워드에 몰입하기는 마찬가지다.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언어학과 4학년 강수진(23·여)씨는 “미국에서는 1학년 때부터 리더십·봉사활동·사회경험으로 나눠 커리어를 관리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우리 학교에서도 회계학 포럼, 리더십 클럽, 해외 봉사활동 등 취업 키워드를 위한 활동이 많다”고 말했다. 미국 컬럼비아대 대학원생 조영석(27·치의학 전공)씨는 “월가의 유수한 금융기업에서 인턴십을 하고 국제 토론대회나 리더십 행사에 참여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취업 전문가들은 취업 키워드에 너무 집착하지 말 것을 조언한다. 인사 컨설팅 회사 네모파트너스의 유용수 선임 컨설턴트는 “ 화려한 이력서에 비해 면접이나 적성검사 등 시험 성적이 좋지 않으면 ‘속 빈 강정’이라는 평을 들을 수 있는 만큼 전공 공부와 상식, 프레젠테이션 능력을 아울러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현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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