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직원도 임금 삭감 검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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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나누기’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임금 삭감이 임원과 대졸 신입사원에 이어 기존 직원으로도 확산될 태세다. 일단 금융공기업이 총대를 멨다. 김동수 수출입은행장은 10일 기자간담회에서 “현재 노사가 대졸 초임을 삭감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으며, 추가로 기존 직원이 고통을 분담하는 방안에 대해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기존 직원의 임금도 깎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동안 몇몇 공기업에서 기존 직원의 임금 삭감 방안이 물밑에서 검토돼 왔지만, 이를 공개적으로 밝힌 건 수출입은행이 처음이다. 이 은행의 한 관계자는 “아직 노조에 공개적으로 임금 삭감을 제시한 것은 아니고 검토만 하고 있는 단계”라고 말했다. 주택금융공사 등 다른 금융공기업들도 비슷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다만 노조의 반발을 우려해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는 중이다.

일부 시중은행도 직원들의 임금 삭감을 추진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부서장급을 포함한 일반 직원의 임금 삭감 방안을 노조에 제시했고, 노조가 조합원들의 의사를 수렴하고 있는 중”이라며 “그러나 어떤 결론이 내려질지는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도 5급 이상 직원의 임금을 반납하는 방법으로 공기업을 간접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부처별로 실장급은 연봉의 3∼5%, 국장급은 2∼4%, 과장급은 1∼3%, 사무관 이상은 1∼2% 정도를 반납하는 방안을 속속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정부가 공기업의 직원 임금 삭감을 강제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 임금 문제는 노사 간의 임단협 사안인 데다 이를 잘못 처리했을 때 더 큰 분란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공기업의 한 인사 담당자는 “정부가 임금 삭감을 강제하고 있지는 않지만 임금 삭감을 유도하는 분위기는 있다”며 “다만 노조가 강하게 반발할 것으로 예상돼 실제 삭감까지는 진통이 따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은행연합회도 직원의 임금 삭감을 공론화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연합회 김승만 홍보실장은 “16일 2차 중앙노사위원회를 열어 일자리 나누기 등을 논의할 계획이지만 임금 삭감을 공식화하는 방안은 논의에서 제외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정도의 분위기만으로도 노조 측의 반발은 만만치 않게 나오고 있다. 금융노조는 이날 성명을 내고 “정부가 기업의 임금 삭감을 강요할 경우 이는 헌법이 보장한 자율적 노사관계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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