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이명박 대통령이 동네 북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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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통령, 중국이 일으킨 군비 경쟁 경고…전문가, 어리석은 처사’란 제목의 기사를 보도한 ‘환구시보(環球時報)’의 인터넷 기사화면

이명박 대통령 발언을 두고 벌이는 서방과 중국의 세싸움이 가관이다. 이들은 한국 대통령의 발언을 제멋대로 확대하고 해석한 뒤 자신의 잣대에 맞춰 과도한 비평까지 덧붙이고 있다. 한국 대통령이 마치 동네 북이라도 된 듯한 분위기다.

호주를 방문 중이던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5일 현지의 기자회견에서 중국 국방비 증액을 묻는 호주 기자의 질문에 “중국 군비증강이 세계 다른 나라에 어떤 영향 미치게 될지도 생각하게 된다”라고 답했다. 로이터통신은 이 발언에 대해 ‘한국이 중국의 군비 경쟁 경고’라는 자극적인 내용으로 보도를 내보내자, 중국 언론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 대통령의 발언을 ‘매우 어리석은 짓(非常不明智)’이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미·친일 정책으로 인해 한·중관계가 급속하게 냉각됐다는 기사까지 이어졌다.

이번 사건은 지난 4일 중국이 올해 국방비 액수를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4일 리자오싱(李肇星)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의회) 대변인은 "올해 중국의 국방비가 전년 대비 14.9% 증가한 4806억8600만 위안에 달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자 5일 호주 캔버라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케빈 러드 호주총리의 한·호주 정상회담에 이어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호주 기자가 중국의 국방비 증액과 북한의 미사일 발사 움직임에 대한 이 대통령의 견해를 물었다. 이 대통령은 “중국의 군비증강이 15% 늘어났다는 보도에 대해 듣지 못했고, 특히 작년 얼마였는데 금년 금액상 얼마 됐는지 모르겠다. 단지 얘기할 수 있다면 동북아에서 군비 증강이 경쟁적으로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남북 간도 대치 돼 있고, 중국 군비증강이 세계 다른 나라에 어떤 영향 미치게 될지도 생각하게 된다”라고 답했다.

로이터 통신은 이날 ‘중국의 국방 지출이 한국의 군비 경쟁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송고했다. 기사는 이명박 대통령이 중국의 두 자리 수 국방비 증액에 따른 동북아 군비 증강 경쟁의 위험성을 경고했다고 시작했다. 이어 통신은 "올해 15% 정도 늘어난 중국의 국방비가 일본과 한국의 방어 전략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통신은 이 대통령이 “특히 동북아 지역은 매우 역동적이고 휘발성 있는 지역으로 남북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고 게다가 우리는 중국이 국방비를 늘이는 문제에도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고 이대통령이 직접 한 말과는 다른 내용을 전했다.

이 보도가 나가자 중국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구시보(環球時報)’는 ‘한국 대통령, 중국이 일으킨 군비 경쟁 경고…전문가, 어리석은 처사’란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환구시보는 익명의 중국 한반도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로이터의 보도가 사실이라면 한국의 이 문제에 대한 태도 표명은 매우 어리석은 처사"라고 말했다. 신문은 이어 "중국의 이웃인 한국이 서방의 '중국 위협론'에 맞춰 덩달아 춤을 추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전문가는 "한국이 금융위기에 직면해서도 국방예산을 여전히 큰 폭으로 늘이고 있으며 국방비가 정부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중국에 비해서 월등히 높다"며 “한국의 2008년 국방예산은 2007년 대비 9% 증가해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5.2%"라고 한국 국방예산의 증가를 문제 삼았다.

환구시보의 인터넷 사이트는 이 기사와 함께 지난해 부산 앞바다에서 벌어진 국제 관함식을 비롯해 한국의 패트리어트 미군 부대, 한국군이 보유한 F-15K 등의 사진을 9페이지에 걸쳐 화보로 실었다. 마치 한국이 동북아 군비 경쟁에 앞장선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한편 홍콩에서 발행되는 명보도 10일자에 환구시보의 보도를 인용해 이명박 대통령의 친미, 친일 정책으로 중한관계가 급속히 냉각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을 부정확하게 전달한 서방의 통신과 이를 '중국 위협론'에 근거해 제 입맛에만 맞춰 해석하면서 9페이지에 걸쳐 특집을 내는 중국 언론의 자세다. 그러나 서방과 중국의 대립각이 첨예한 군사·안보 문제에 관해서는 한국 당국자들도 발언을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xiao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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