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들 나눔 진화 … 실직자 껴안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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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광역시에 사는 박모(28)씨는 10일 ‘임시 학생’이 된다. 울산대에서 하루 4시간씩 중국어와 무역실무 강의를 수강하기 위해서다. 영국 런던대에서 건설경영학을 전공한 박씨는 “지난해 9월 병역특례 산업체 근무가 끝난 뒤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며 “학교가 제공하는 무료 중국어 강의와 금융특강을 듣고 금융사 자격증을 따 취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울산대는 실직 주민들의 재취업 능력 개발을 돕기 위해 39개 강좌를 개방했다. 41명이 평균 3개의 강의를 듣고 있다. 박종희 교무처장은 “최근 6개월 내 실직자를 대상으로 신청받고 있다”며 “중국어 강의는 40일, MBA와 무역실무는 5일간 특강한다”고 말했다.

서울대는 실직자와 퇴직자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10일부터 17일까지 실직자들을 위한 맞춤형 재교육 사업에 참여할 대상자를 신청받는다. 도서관과 세미나 수업 등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과정은 ▶특별연수생(1000여 명) ▶취업역량(500여 명) ▶경영능력(500여 명) ▶융합과학기술(500여 명) 4개다. 퇴직한 대기업 임원을 교수·강사로 초빙하거나 예비창업자 과정도 만들었다. 추진위원장인 김형준(재료공학부) 교수는 “외환위기 때 실직자에게 강의를 1년6개월간 개방해 150명을 재교육시킨 경험을 되살렸다”며 "50여 명의 교수가 자원봉사를 자청했다”고 말했다.

대학들이 실직자 ‘껴안기’에 나섰다. 경제난으로 어려움을 겪는 청년실업자는 물론 중장년층에게도 대학 문을 열고 맞춤형 교육과 강의를 제공하는 ‘아름다운 나눔’을 진행 중이다. 지역주민들에게 지식을 나누고 시설을 무료로 제공해 고통을 나누겠다는 것이다.

숙명여대가 2일부터 미취업자를 위해 개설한 ‘학사 후 과정’에는 전체 졸업생의 21%인 314명이 참가했다. 생명과학부를 졸업한 최윤선(23)씨는 “로스쿨에 도전하려 철학개론과 자본주의 문화비평 과목을 듣고 있다”며 “학교가 졸업생을 배려해 힘이 난다”고 말했다.

지역사회 특성을 살리는 나눔도 있다. 신라대는 매년 15곳의 중소기업에 무료로 기업 이미지(CI) 디자인을 제작해 제공하고 있다. 조무광 커뮤니케이션디자인학부 교수는 “CI 무료 제작 프로그램을 통해 기업이 이미지를 높이고 학생들도 실무경험을 쌓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명지대·성결대·안양대는 지역 재래시장 살리기에 나섰다. 경기도와 안양·용인시가 지원하는 ‘1시장 1대학 자매결연’ 사업으로 재래시장의 마케팅과 경영, 특화상품 개발을 돕는다.

고려대는 지난해 11월부터 450여 명으로 ‘교직원봉사단’을 구성해 직접 주민을 돕고 있다. 이기수 총장은 지난달 서울 성북구 주민들에게 연탄을 직접 배달했다.

이원진·이종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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