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의학 시각 영화해석 '내눈앞의 섹스 그리고 영화'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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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성 (性) 을 빼고서 영화를 말하기란 쉽지 않다.

아무리 고상한 주제의 작품이라도 감정에 직접 호소하는 애정.섹스.남녀 관계라는 요소를 무시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영화라는 대중문화매체의 속성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영화 속에 나타난 성의 양상을 진지하게 살피는 사람은 별로 없다.

성은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사회적 금기나 터부이기 때문이다.

연세대 의대에서 공부한 정신과 전문의인 배종훈씨가 쓴 '내 눈 앞의 섹스 그리고 영화' (명경刊) 는 12편의 외화를 성의학 (性醫學) 의 시각에서 독특하게 해석하고 있어 흥미롭다.

저자는 관음증.페티시즘.불감증.콤플렉스.일탈.동성애 등 다양한 성의학적 주제들을 영화 속에서, 그리고 영화와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찾아 설명한다.

또 영화 속에 제시된 사회나 개인의 환경이 성적 욕망이나 행위를 유발하는 정신의학적인 메카니즘을 살피면서 궁극적으로는 억압적인 사회구조를 비판하는 입장을 취한다.

예로 저자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의 격렬한 정사를 변태라고 비난한 검열 당국의 행위를 무지한 처사라고 공박한다.

자신의 상식과 다르게 행동한다고 해서 은밀히 성적 환상을 갖고 현실에서 개인적으로 적절히 즐기고 있는 일반남녀들까지도 모두 변태로 몰아버린 무책임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또 '데미지' 나 '페드라' (국내개봉명 : '죽어도 좋아' ) 처럼 근친상간을 다룬 영화를 무조건 반대하거나 내용을 바꿔 상영하는 것에 대해서도 인간이 무의식 속에 지니고 있는 심리기반을 무시한 행위라고 규정한다.

저자는 영화의 성적 표현에 대한 검열당국의 제재에 대해 "성이 복잡하고 다양한 심리를 표현하는 수단임을 간과한 것" 이라고 비판한다.

저자는 또 정신의학에서 행하는 성치료와 일치하는 장면들을 제인 캠피언 감독의 '피아노' 에서 발견한다.

시선으로 애무하기, 말하지 않고 피부만 접촉하는 스킨십 등 신체적 느낌에 충실한 남녀간의 접근 방식은 정신의학에서 성적 문제를 치료하는 방식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나무 등걸에 입을 맞춘 어린이를 혼낸 남자 주인공이 남의 정사장면을 몰래 훔쳐보는 관음증적인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해서도 주목한다.

이는 어렸을 때의 성적 억압이 나중에 갖가지 성도착증과 아이에 대한 폭력을 불러 일으킨다는 성의학 이론에 그대로 맞아 떨어지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나인 하프 위크' 에 나타난 주인공들의 비정상적 성행위에 대해 "자식에게 건강한 유전자를 주고자 하는 내적인 힘에 의해 머리가 나빠보이는 금발에게는 유혹당하면서 동시에 경계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 이라고 풀이한다.

그러면서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가 여주인공의 불감증과 남편의 성적 무능을 문제 삼은 것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시한다.

저자는 이 영화의 원작자에게 "더 잘 성교하려 하지 말고 더 좋은 연인이 되도록 노력하라" 고 일침을 놓는다.

저자는 남녀간의 섹스를 "단순한 육체적 결합을 넘어 애정과 증오, 화합과 소외, 친밀과 고독, 행복과 불행, 고귀함과 천박함 등 인간의 모든 감정의 갈등을 관통하면서 표현하는 삶의 진지한 몸짓" 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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