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마디 “북한과 대화 원해, 지금도 애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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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즈워스 미 북핵 특사가 7일 인천공항에 도착,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스티븐 보즈워스 미 북핵 특사가 7일 북한의 미사일 위협속에 방한했다.그는 “북한과 대화하길 원한다”고 했다.미사일 발사 후에도 방북할 것이냐는 질문엔 "복잡한 문제"라며 즉답을 피했다. 마이크 앞에서 거침 없었던 크리스토퍼 힐 전 차관보와 사뭇 다른 스타일이다. 실무 책임자인 성 김 6자회담 미측 수석대표도, 최근 임명된 위성락 한반도 평화교섭 본부장도 차분하고 논리적이고 전략적이다. 이들의 협상 스타일과 성향을 짚어봤다.다음은 중앙SUNDAY기사전문.

스티븐 보즈워스(69) 미 대북 특사가 7일 방한했다. 중국·일본을 거쳐 오후 인천공항에 도착한 그는 “북한과 대화하기를 원하며, 지금도 애쓰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북한과 접촉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준비하며 민간 항공기에 대한 안전까지 위협하고 있는 가운데 북핵 문제의 최전선인 서울에서 설득의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그는 “북한이 인공위성이라 하든 미사일이라 부르든 잘못된 생각이라는 우리 입장을 전달해 왔다. 북한이 일련의 위협 발언을 중단한다면 모두가 더 행복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마이크 앞에 선 그는 말을 아꼈고 신중했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해도 방북하나.
“복잡한 문제다.”

-방북을 위한 전제조건이 뭔가.
“그 문제는 얘기하고 싶지 않다. 지금 시점에선 방북할 계획이 없다.”

성 김(49) 미 국무부 6자회담 수석 대표와 함께 온 보즈워스는 이날 저녁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 대사가 주최한 만찬장에서 한국 측 6자회담 수석 대표인 위성락(55)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과 상견례를 했다. 첫 만남인 만큼 차분하게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는 자리였다.

보즈워스 특사 임명으로 한국의 핵 협상 책임자인 위 본부장의 카운터파트는 보즈워스-성 김의 2중 구조가 됐다. 미 행정부의 대북 정책 전반을 조정하고 북한 고위층과도 회담하게 될 보즈워스,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로 실무를 집행할 성 김, 두 사람과 머리를 맞대야 하기 때문이다.

한·미 북핵 사령탑은 협상 중시파
7일 공항 기자회견에서 선보였듯 보즈워스는 ‘거침없는 달변가이며 이벤트 지향적’이었던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차관보와는 다른 스타일이다. 과묵하고 치밀한 전략가로 알려져 있다. ‘보즈워스·성 김-위성락’이라는 한·미 조합은 차분하고 논리적이며 유연한 스타일이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외교부 안팎에서 위 본부장은 “분석적이며 전략적 사고가 두드러진다”는 평을 듣는다. 검사 출신인 성 김 대표도 논리적이고 디테일에 강하다.

협상을 중시하는 점도 같다. 1995~97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사무총장으로, 이어 2000년까지 주한 미국 대사로 일한 보즈워스는 “정치적 보상을 포함하는 포괄적 방법으로 북한과 주고받기식 협상을 해야 한다”고 말해 왔다. 지난해 모턴 아브라모위츠 전 국무부 차관보와 뉴스위크지에 낸 공동 기고문에서 그는 “북한처럼 취약하고 위험한 국가에는 장기적 관점의 접근이 필요하다”며 “그런 접근이 북한의 억압 정치를 강화하는 데 기여한다는 비판이 있겠지만 북한 붕괴를 기다리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했다.

위 본부장도 업무 개시 직후 “진정한 비핵화가 이뤄진다면 다양하고 유연한 입장을 취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청와대 안전보장회의(NSC) 정책조정관이던 2004년 6월 3차 6자회담에 앞서 미 백악관의 마이클 그린 아시아담당 선임국장, 로버트 조셉 군축담당 보좌관과 6자회담 최초의 대북 패키지 협상안인 ‘준 프로포절’(June proposal)을 만들었다. 1년여의 6자회담 냉각기를 거쳐 이듬해 탄생된 9·19 공동성명의 모태가 된 제안이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비핵화’라는 목표는 확고하다. 정부 당국자는 “보즈워스의 방법론은 유연해 보이지만 원칙을 벗어나지 않는다”며 “힐 차관보처럼 북한과 이면 합의나 구두 합의를 했다가 뒤통수를 맞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위 본부장도 “협상이 과시적 성과에 치중하다 보면 우리사회가 북한의 핵보유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일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핵실험을 한 지 4년이 지났다는 점을 상기하면서 비핵화라는 지향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비핵화 목표는 확고
보즈워스는 여러 차례 북한을 방문했다. 94년 제네바 핵 합의 이후 핵 시설 해체의 대가로 경수로를 공급해 주기 위해 만든 KEDO의 사무총장으로 두 차례 평양에 갔다. 96년 3월엔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을 만났다. 당시는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북한 붕괴설이 나돌던 때였다.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강 부상의 발언 요지는 ‘세상에서 떠드는 것처럼 우리 공화국은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보즈워스는 그런 면담 내용을 한국과 일본 대표단에 상세하게 설명했다. 북핵 특사로 임명되기 수주 전에도 개인 자격으로 방북, 6자회담 북측 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을 만났다.

보즈워스는 경수로에도 애착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정부 관계자는 전한다. KEDO에 관여했던 당국자는 “북한이 진심으로 핵 폐기를 결단한다면 보즈워스의 등장은 북한으로선 더없는 기회”라고 말했다.

7일 오후 서울에서 러시아 측 6자회담 수석 대표인 알렉세이 보로다브킨 외무차관을 만난 보즈워스는 9일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과 위 본부장 등 한국의 외교안보 라인을 대부분 만나 미사일과 북핵 문제 전반을 협의한다. ‘보즈워스 구상’을 위한 한국과의 첫 협의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움직임으로 꼬인 지금의 상황이 보즈워스 구상에 어떤 영향을 줄지 주목된다.

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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