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52년 남·북한 같은 점 달라진 것…멀어진 언어·제도 습성은 한핏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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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7면

한반도의 허리가 동강난지도 어언 반세기를 넘어섰다.

옛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체제 붕괴로 국제사회에서의 냉전은 이미 사라졌지만 한반도에는 여전히 불신과 반목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남북한이 진정한 화해와 협력의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 극복해야 할 과제는 적지 않다.

그중에서도 다른 체제 속에서 살아오며 이질화된 민족정서를 회복하는 일은 무엇보다 시급하다.

다행히 분단사는 한 민족으로 살아왔던 반만년 역사에 비하면 길다고 할 수만은 없다.

남북한간에는 아직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훨씬 많다.

남북 이질화의 간격을 좁혀나가는 작업이야말로 통일로 가는 중요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중앙일보는 창간 32주년을 맞아 남북한간에 어떤 것들이 달라졌고, 어떤 것이 같은지를 점검했다.

[편집자]

◇ 정치.군사 = 한국은 삼권분립 원칙에 따라 정부.국회.사법기관이 상호 균형을 취하지만 북한은 당 (黨) 절대우위 체제다.

북한주민은 예외없이 한개 이상의 조직에 소속돼 학습.강연회.총화를 통해 정치.사상학습을 받아야 한다.

남북 모두 국가 (國歌) 를 애국가로 부르지만 가사는 전혀 다르다.

북한의 애국가는 '아침은 빛나라…' 로 시작된다.

한국 군 (軍) 의 장성 계급체계는 준장 - 소장 - 중장 - 대장으로 돼 있다.

북한은 소장 - 중장 - 상장 - 대장으로 돼 있고, 그 위에 차수.원수.대원수의 독특한 계급이 존재한다.

한국은 국민 개병 (皆兵) 주의를 채택하고 있으나 북한은 징병이란 용어 대신 초모 (招募) 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신검 불합격자.성분불량자.일부 대학생을 정책적 배려로 초모대상에서 제외시킨다.

남북은 을지문덕.강감찬.홍범도등 외세에 맞서 나라를 지키거나 되찾기 위해 싸운 인물을 추앙하며 이완용같은 매국노를 비판하는 점에서 같다.

북에서도 이순신을 '세계적 명장' 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유관순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김유신은 삼국통일을 이룬 '명장' (남) 으로, 외세를 끌어들인 '반역아' (북) 로 평가가 엇갈린다.

◇ 경제생활 = 북한의 은행.저금소는 주민들의 기피대상이다.

대출은 안되고 없는 돈을 짜내가기만 하기 때문이다.

상품유통은 국영상점을 통한 배급이 중심이나 최근엔 상품공급 부족으로 장마당이 국영상점의 지위를 대체하는 형국이다.

세금은 74년 이후 사라졌다.

국가경영은 기업의 거래수입금등 이른바 '사회주의 경리수입' 에 의존한다.

최근 가내작업반.협동식당.장마당.외국기업.나진 - 선봉지역등에 부분적으로 세금제도가 재도입되고 있다.

외출복은 80년대초까지도 인민복과 흰 저고리.검정 통치마의 조선옷이 주류였으나 86년 '주민복장규정' 과 89년의 평양축전을 계기로 변화가 가속되는 중이다.

식량은 57년 이후 협동농장원을 제외한 전주민을 대상으로 배급제가 실시되고 있으나 최근 식량난 가중으로 배급체계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주택은 국가로부터 배정받고 분기별로 사용료를 내는 임대형식이나 일각에선 비공식적으로 주택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근로자 월소득은 80~1백원인데 주택사용료는 고급주택이 20~30원, 농촌주택은 방 한칸당 1원50전 정도. 북한의 인구이동은 철도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버스등은 철도가 들어가지 않는 곳을 이어주는 보조적 운송수단이다.

양질의 노동력, 농촌기피 현상, 과중한 군사비 부담등은 남북이 유사한 점으로 꼽을 수 있다.

남쪽의 이농 (離農) 현상과 비슷한 이유로 북쪽에도 도시생활 선호가 일반화됐다.

최근 남쪽의 일부 귀농 (歸農) 바람과 북쪽의 식량난에 따른 농촌기피현상의 완화도 결과적으론 유사하다.

◇ 사회생활 = 북한주민에게 직장선택권은 없다.

당이 전적으로 결정한다.

개인의 희망은 참고사항일 뿐이다.

판단기준은 당사자의 성분과 당성이 최우선이며 다음이 학력.자격증.활동력.근무평점.실무능력등을 종합평가한 직무수행능력이다.

노동관리기관.배치체계는 최종학력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학력이 남쪽 못지않게 중시되는 사회다.

고등중학교 졸업자나 인민군 사병 제대자는 인원이 부족한 직장.작업장에 집단 배치되는 경우가 많다.

북한사람들은 독한 술과 담배를 특히 즐긴다.

다른 공장은 멈춰도 담배공장만은 어김없이 돌아간다.

기호식품으로는 냉동 강냉이국수.속도전가루 (옥수수로 만든 미숫가루의 일종).남새 (채소) 밥등이 있으나 먹거리 해결 차원의 대체식품이라고 보는게 정확하다.

남에서는 보신탕, 북에선 단고기란 이름으로 개고기를 즐기는 것은 일치한다.

◇ 교육 = 북한에서 가장 중시되는 과목은 사상교양이다.

인민학교에서는 한국에서처럼 국어.수학.체육.음악.자연등을 가르치지만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원수님 어린 시절' '공산주의 도덕특강' 등 사상교양과목이 우선시된다.

신학기는 9월1일 시작된다. 졸업식은 대체로 8월. 대학시험은 교육위원회에서 선정된 대상자만이 해당 대학에 입학원서를 제출할 수 있으며, 7월중 하루 한과목씩 수학.물리.외국어.문학.혁명역사등에 대한 필기시험과 인물검사를 실시한다.

◇ 스포츠 = 북한에서도 농구는 인기종목. 북한은 압록강체육선수단 농구소조 (小組) 를 '태풍' 이라는 이름의 프로농구단으로 개편, 출범시켰다.

또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각급 학교및 직장단위 농구소조를 창설하는등 농구붐이 일고 있다.

또 한국의 박찬호와 선동열이 미국.일본 프로에 진출했듯 북한도 세계 최장신 선수 이명훈을 미 프로농구 NBA에 진출시키기 위해 캐나다에 보내 훈련시키고 있다.

◇ 언어 = 우리의 표준어와 북한의 문화어는 어휘.발음.철자법.띄어쓰기.문체.화법.언어 예절법등 모든 부문에서 차이가 난다.

특히 북한은 지금까지 네번에 걸친 철자법의 개혁과 문맹퇴치사업, 그리고 한자 폐지, 말 다듬기 운동, 문화어 운동등으로 언어생활에서 남한과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문화어는 발음상 모음 원순화현상이 심하다.

예컨대 남한의 '걱정없다' 는 말은 북한에선 '곡종옵다' 에 가깝게 발음된다.

'이' 모음 역행동화 (건더기는 건데기)가 발생하며 두음법칙은 인정되지 않는다.

예컨대 '노동' 이 아니라 '로동' 이라고 읽고, 쓰는 것은 두음법칙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휘분야가 남북간 이질화가 가장 심각한 부분이다.

의미가 다른 낱말이 많다.

어버이는 친부모가 아니라 김일성,빨치산은 게릴라보다 혁명적 영웅이란 의미다.

외래어에서 아이스크림은 얼음보숭이, 샤워실은 물맞이칸등으로 표기된다.

한때 '구석차기' (코너킥) 등으로 표현됐던 스포츠용어는 올초부터 우리와 같은 식의 외래어로 복원된 바 있다.

김성진.신원태.정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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