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보다 작품성이 중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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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브스코리아송병준 그룹에이트 대표는 인기리에 방영 중인 TV 드라마 <꽃보다 남자> 제작으로 주목받고 있다. <꽃보다 남자>의 성공 비결과 함께 한국 드라마의 현실을 짚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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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거품이 꺼지고 있습니다. 예전엔 일본이나 대만에서 한류 스타들이 나오는 한국 TV 드라마는 무조건 사갔어요. 지금은 완성도와 시청률을 꼼꼼히 챙깁니다. 잘 만들어진 드라마는 일본뿐 아니라 아시아 전체 시장에서 각광받고 있습니다.”

[Korea Power Celebrity 40] 송병준 대표의 드라마 성공 비결

송병준(49) 그룹에이트 대표는 작곡가이자 음악 프로그램 진행자, CF 모델로 친숙한 얼굴이다. 하지만 지금은 드라마 업계에서 ‘미다스의 손’으로 통한다.

2002년 장나라 주연의 SBS TV 드라마 <명랑소녀 성공기>를 시작으로 소지섭 주연의 <미안하다 사랑한다>(2004), 정지훈(비)이 등장한 <이 죽일 놈의 사랑>(2005), 한예슬이 나온 <환상의 커플>(2006), 주지훈과 윤은혜를 스타로 만든 <궁>(2006) 등이 송 대표의 손을 거쳤다.

최근 방영 중인 <꽃보다 남자>는 시청률 30%를 훌쩍 뛰어넘었다. 서울 한남동에 있는 본사 사무실에서 만난 송 대표는 담담한 얼굴이었다.

“<꽃보다 남자> 시청률은 15% 정도 예상했는데 이 정도까지 될지는 솔직히 몰랐습니다. 하지만 워낙 마니아 층이 좋아할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실패한다는 생각은 안 해 봤어요.”

기획력과 작품성이 중요하다

송병준 대표가 밝히는 드라마의 성공 비결은 스타가 아닌 기획력과 작품성이다. 송 대표는 과거 장나라, 윤은혜, 임수정, 한예슬부터 최근 이민호까지 주로 신인급이나 연기력이 검증되지 않은 연기자를 과감하게 캐스팅해 성공시켰다. “드라마에 스타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건 아닙니다. 스타에 의존한 제작이나 기획을 안 한다는 게 제 원칙입니다. 스타보다는 작품성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드라마에 신인급을 주로 쓰다 보니 톱스타 출연료 부담이 적다. 대신 그 돈을 드라마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미술비 등 포스트 작업에 쓰는 편이다.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송 대표는 “현재 외주 드라마 제작사의 현실을 보면 스타의 몸값으로 제작비는 상승하고 있지만 방송사의 예산은 줄어들고 있다”며 “연기자 몸값도 국내 현실에 맞는 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송 대표는 “소수 한류 스타처럼 확실한 수익률을 보장한다면 개런티가 그만큼 높아도 상관없다”며 “그러나 일부 연기자는 스스로에 대해 평가를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꼬집었다. 송 대표는 “지금 한국 드라마는 중환자실에서 산소 호흡기로 생명을 연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드라마에 투자하던 펀드는 더 이상 여력이 없고, 신규 투자를 하려는 투자자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일부 회사는 모럴 해저드로 시장에 불신을 일으키고 있다. 그는 “불법 다운로드를 근절시킬 저작권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며 “판권과 관련해선 방송사와 외주 제작사가 윈-윈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 대표는 드라마 판권을 직접 가지고 제작 초기부터 해외 시장을 겨냥한다. <꽃보다 남자>는 방송 일정은커녕 방송사도 정해지지 않은 기획 상태에서 제작비 규모의 투자를 약속 받았다. 여기엔 과거 송 대표가 기획했던 <궁>, <미안하다 사랑한다>를 통해 해외 시장에서 작품성을 검증 받은 것이 도움이 됐다.

제작비가 50억 원대 후반에 머물렀던 드라마 <궁>은 일본에서 현재 100억 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꽃보다 남자>도 해외에서 러브콜이 쏟아지고 있다. 송 대표는 “해외 시장에서 인지도를 쌓은 덕분에 잘 만들어진 기획서 한 장으로 제작비 이상의 금액을 보장받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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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뜨고 있는 〈꽃보다 남자〉 배우들.

일본의 인기 만화가 원작인 <꽃보다 남자>는 검증되지 않은 신인 연기자 캐스팅에다 내용은 ‘10대용 학원물’이라는 이유로 방송사의 푸대접을 받았다. 그래서 광고 판매에 따라 제작비를 보전하는 ‘광고 연동제’라는 불리한 계약도 맺었다.

하지만 방영 3회 만에 시청률 20%를 돌파하며 처음 6개에 불과했던 협찬사가 지금은 16개로 늘었다. 그는 “철저하게 10~20대 여성을 타깃으로 했기 때문에 자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꽃보다 남자>는 대만과 일본에서도 드라마로 만들어져 큰 성공을 거뒀다. 때문에 판권을 따내는 경쟁도 치열했다. 송 대표는 “20여 회사가 드라마로 만들겠다고 뛰어들었고, 제작비도 우리의 5배 이상을 제시했다고 들었다”며 “하지만 원작 판권을 갖고 있는 일본 회사가 우리 회사의 작품 색깔을 좋아했다”고 설명했다.

송 대표는 <꽃보다 남자>보다 다음 작품에 관심이 더 많다. 주로 만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들이다. 만화 <탐나는 로다>를 각색한 드라마부터 일본 와인 만화 <신의 물방울>의 애니메이션이 그 주인공이다. 8부작 미니시리즈 퓨전 사극으로 미국 시장에 진출할 계획도 있다. 송 대표는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고위험, 고수익이라고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며 “철저한 기획을 갖고 접근하면 확실한 수익을 보장받는다”고 강조했다.

송 대표는 “지난해 <궁>의 해외 판매와 <꽃보다 남자>의 선판매로 장부상 흑자를 냈지만 올해는 매출 200억 원 이상을 올려 제대로 된 흑자를 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글 손용석 기자·사진 정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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