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게 즐겁게]오징어 요리…동해안 물회·순대맛 '쫄깃쫄깃' (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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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우리가 어렸을 때의 오징어라고 하면 으레껏 말린 오징어인 건 (乾) 오징어가 오징어의 전부로만 알았다.

오징어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채 건오징어의 생김새 그대로 납작한 것이려니 했다.

소학교 시절, 어쩌다 소풍을 가게 될 때나 운동회 때에야 오징어 한 마리 차지할 차례가 왔고, 이를 쭉쭉 찢어 먹는 맛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건오징어에 땅콩을 말아 먹는 것을 하나의 도락쯤으로 생각하는 도시의 숙녀들이 적지 않지만, 그들이 콤콤한 맛의 건오징어를 좋아하는 데에는 생리적으로 까닭이 있다는 해괴한 말이 있지만,점잖은 독자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할까 두려워 여기에 소개할 마음은 없다.

많이 먹으면 혓바닥이 칼칼해지고 관자놀이가 아플 정도이지만 건오징어도 심심풀이 이상의 맛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오징어의 참맛은 건오징어보다 생오징어에 있다 할 것이다.

요즘은 레저산업이 발달하여 여름철만 되면 대거 동해안으로 몰려가서 산오징어를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원양어업의 발달로 냉동어일 망정 도심에 앉아서도 오징어회며, 한치회를 먹을 수 있게 되었으니, 희한한 세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겠다.

내가 오징어회를 처음 먹어 본 것은 식도락기행을 시작하기 훨씬 전으로 맛을 찾아서가 아니라 소설 취재를 위해 동해안을 찾았을 때였고, 횟집에서가 아니라, 직접 오징어 배를 타고, 오징어잡이에 따라나선 배위에서였다.

처음으로 맛보게 된 오징어회는 맛이 있는 것이 될 수가 없었다.

껍질만 벗기고 아무렇게나 듬성듬성 썬데다가 이렇다 할 양념도 없이 어기적어기적 씹어 먹어야하는 회는 질기기만 했지 도무지 맛을 느낄 수 없었다.

더군다나 바람기가 없는데도 배가 심히 요동하여 수질 (바닷사람들은 배멀미를 수질이라 한다) 을 하여 맛을 분간할 능력도 없었다.

아무튼 이 소설 취재를 위해 나는 보름 가까이 대포항의 어느 선주의 집에 머물러 있었다.

설악산 어구, 조그만 어촌인 대포항에는 지금은 횟집이 즐비하지만 당시에는 횟집같은 것은 있지도 않았다.

어디까지나 오징어잡이 어선과 이른 겨울철에 도루묵잡이 어선이 드나들 수 있는 작은 축항 (築港)에 지나지 않았다.

그 한적한 대포항은 지금 횟집 마을로 되어있지만 그 안쪽의 '대포횟집' 과 함께 쌍벽을 이루는 원조집의 하나가 그 부인이 직접 경영하는 '별미횟집' 으로 현재는 그 아들이 대를 이어 영업을 하고 있다.

나는 이러구러한 인연으로 해서 기회 있을 때마다 여러 지면을 통해 이 집을 소개하였다.

편애가 있지 않았느냐는 험구가 있을 수도 있겠으나 우리나라의 10대 회집을 선정하라 하면 그 하나로 꼽을만한 별미집이어서 거리낌은 없다.

오징어물회와 더불어 오징어 미각에 쌍벽을 이루는 것에 오징어순대가 있다.

오징어잡이 어선이 풍랑을 만나 먹을 것이 떨어져 잡은 오징어 속에 김치며 반찬 찌꺼기 따위를 넣고 삶아 먹은 것이 그 유래가 되었다고 하는데, 속초시 금호동에 있었던 오징어순대의 원조집 '삼영식당' 은 어떤 연유로서인지 문을 닫았다.

별로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오징어의 다리와 머리를 떼어내고 내장을 훑어낸 다음 소금물에 헹구어 떼어낸 다리를 곱게 다진 것과 함께 찹쌀.쇠고기.땅콩.통깨에 어린 열무를 살짝 데쳐 갖은 양념을 해서 잘 배합한다.

무려 54가지의 재료가 들어간다고 했는데, 그 맛이 각별했었다.

그 집이 아쉽게도 사라졌지만 이 집에서 조리법을 배운 집들이 속초는 물론 경향 각지에 산재해 있다.

앞서 소개한 두 집 외에도 속초의 '진양식당' , 강릉의 '별미식당' 과 서울에서의 오징어요리 개척자로 개업 초기 나 자신이 직접 동해안으로 안내하여 요리를 배우게 했던 강남의 '오대감' , 앞서의 '삼영식당' 에서 그 요리법을 배워온 서초구의 '울릉도 오징어 보쌈' , 송파구 가락동의 '울릉도' 집등이 유명한 오징어전문점이다.

홍성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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