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싱글턴 감독 '로즈우드' 흑인학살 실화 다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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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흑인들에 대한 뿌리깊은 인종차별 문제를 집요하게 다루고 있는 스파이크 리 감독의 영화들은 일방적으로 흑인쪽의 관점에서 문제를 제시하고 파악하는 듯하지만 흑인 특유의 리얼리티 포착과 적확한 상황제시 때문에 곧 잘 수긍하고 감동하게 된다.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스파이크 리와 비견되는 미국 서부출신의 흑인 감독으로 존 싱글턴의 작품들이 크게 주목받고 있다.

91년 '보이즈 앤 후드' 로 흑인 최초로 아카데미감독상 후보에 오르기도 한 싱글턴은 백인과 유색인종 사이의 개인적인 마찰보다는 사회제도 속에서 왜곡될 수 밖에 없는 인종적인 편견을 사실적이고 저항적으로 그려 내고 있다.

흑인소년으로서 암울한 성장기 체험을 한 싱글턴은 95년에는 '하이어 러닝' 이란 작품으로 인종과 성에 대한 편견이 미국 대학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음을 보여 줬었다.

비디오 최근작 '로즈우드' (브에나비스타) 는 거칠지만 그의 인종편견에 대한 저항의 의지가 한발 더 나아간 작품이다.

'로즈우드' 는 흑인들이 모여사는 플로리다주의 작은 마을 이름. 1920년대 이 마을에서 평온하게 살던 흑인들이 백인들의 사소한 오해로 말미암아 끔찍하게 학살당한 실화를 영화로 재현시키고 있다.

로즈우드사건은 처음에 몇몇 흑인 불량배들이 죽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60년 후 한 기자의 추적으로 수백명의 흑인들이 학살된 것으로 밝혀진다.

특히 사건의 발단이 보는 이로 하여금 전율하게 한다.

이웃 마을의 한 백인 여자가 실제로는 백인 정부로부터 폭행당했으면서도 남편을 두려워 한 나머지 흑인이 그랬다고 무심코 거짓말을 하자 분노한 백인들은 수십곳의 흑인 가정을 불태워 버리게 된다.

거의 마을 전체와 주민들이 불타고 가까스로 살아남은 소수의 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져 종적을 찾아볼 수가 없게 되어 흑인들의 아름다운 마을은 풍문으로만 존재하는 형편이 된다.

흑인 마을에 들어오는 백인 퇴역장교가 등장해 처음엔 흑인들로부터 의심을 받게되지만 결국엔 마을이 완전히 쑥밭이 되는 것을 막기위해 처절한 싸움을 막는다.

또 흑인 마을에서 상점을 하고 있는 백인으로서 무참히 쓰러져 가는 흑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모습으로 존 보이트가 열연한다.

싱글턴 감독은 이 백인 퇴역장교와 상점주인을 통해 인종간의 갈등을 해소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미국 현대사의 또다른 추악한 면을 보여주는 싱글턴의 이 작품이 힘을 얻는 데에는 오랫동안 감춰진 진실을 기자가 생존자들과 가까스로 인터뷰를 하면서 차츰차츰 드러나게 한다는 방식때문이다.

채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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