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념 경제학] 화장실서 … 문자로 … 초스피드 결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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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업무 속도가 이 정도면 기네스북에 오를 만도 하겠다. 지난달 중순 서울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본사. 상품본부 가정용품팀 이인영 부장은 그동안 한 번도 안 해본 경험을 했다. 경청호 부회장에게 봄을 맞아 상품기획 개편과 관련된 결재를 받기 위해 4층으로 올라온 순간 경 부회장이 화장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주저 없이 따라 들어갔다. 머쓱하긴 했지만 그는 핵심 사항을 보고했고, 경 부회장은 “OK”라고 대답했다. 예전 같으면 결재 순번을 마냥 기다려야 했지만 대기시간 없이 1분 만에 결재를 끝냈다. 김형종 상품본부장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직원이 외근 중에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간단하게 결재사항을 보고했다. 그러자 그는 주저 없이 문자로 사인했다.

‘화장실 결재’는 이 회사 정지선 회장이 지난해부터 불황을 뚫기 위해 강조하고 있는 업무혁신 사례 중 하나다. 이를 경 부회장이 회사에 적극 전파하고 있다.

현대백화점에는 또‘페이퍼리스’제도가 있다. 불필요한 서류를 없애고 각종 자료는 한 장으로 만든다. 원 페이퍼를 통해 직원들이 현장 일에 몰두할 수 있게 한 조치다.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직원들은 깨알 같은 글씨가 적힌 매출 기록 수첩을 갖고 다녔다. 매장 담당자로서 매출을 모르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 때문. 하지만 지금은 이 수첩이 없다. 매출 수치는 흐름만 파악하는 대신 마케팅에 대한 전략적 마인드를 중시하라는 회사 풍토 덕이다.

마케팅팀 정지영 부장은 “직원들이 퇴근시간도 정확히 지킨다”며 “불황일수록 눈치보지 말고 당당하고 유연하게 임한다는 업무혁신 붐이 확산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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