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출마 결심한 이인제씨, 뜬눈長老 끝에 '출사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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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인제 (李仁濟) 경기지사가 마침내 주사위를 던졌다.

그의 출마결심으로 대선은 5파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대선정국은 더 많은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13일 李지사가 출마선언을 하면 본격적인 다자 (多者) 대결구도가 형성될 전망이다. 당장 청와대와 이회창 (李會昌) 대표측은 당황한 표정이 역력하며 야권은 반기는 모습이다.

李지사는 당초 12일 입장표명을 하려 했으나 출마 - 불출마 - 출마를 오가는 고심끝에 최종결심을 한 뒤 이를 주변에 알리고 자취를 감췄다.

편집자

이인제경기지사가 대선출마로 결심을 굳힐 것임은 이미 예견됐다.

그는 불출마의 명분으로는 애당심 (愛黨心) 을, 출마의 명분으로는 애국심 (愛國心) 을 내세웠다.

어느 것이 더 큰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는 물을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李지사는 진로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큰 길을 가겠다" 며 이대로 주저앉지 않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그러면서 출마에 소극적인 원내측근들을 12일 지사공관으로 불러 설득작업을 벌였다.

이 역시 출마결심을 굳혔다는 징조로 해석됐다.

불출마선언을 할 생각이었다면 그는 출마를 주장한 원외위원장들을 불러 설득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주변상황은 분명했지만 '출마' 라는 말은 피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고려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선 청와대와 이회창 (李會昌) 대표측의 견제를 피하기 위함인 듯하다.

그가 비공식적으로 청와대에 '불출마' 사인을 보냈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지 않고는 청와대와 李대표측이 일관되게 "李지사는 출마하지 못할 것" 이라고 자신감을 보인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결국 청와대와 李대표측은 허를 찔린 꼴이 됐다.

물론 李지사의 앞날은 매우 험난할 전망이다.

경선에 참여해 패배한 터에 탈당해 출마하는 것은 명분이 약하다.

게다가 李지사에게는 당장의 세 (勢)가 없다.

경선후 지금까지 함께해 온 핵심인사중 의원은 5명에 불과하고 나머지 15~16명은 원외위원장이다.

김영삼 (金泳三) 대통령에 대한 고려도 李지사를 주저케 하는 요인이었다.

한 원외위원장은 "여론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발표시기를 12일에서 13일로 늦춘 것은 순전히 YS 때문" 이라고 했다.

정치적 스승에 대한 예우라는 얘기다.

李지사가 주위의 많은 제지.장애를 거부하며 결단을 내린데는 무엇보다 이번이 아니면 더 이상의 기회가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관측된다.

" (신한국당에) 남아 있다가는 고사 (枯死) 할 것" 이라는 지적이 출마라는 험로로 내몰았다는 것이다.

지금은 李대표가 선거때의 역할과 대선후 중책을 제시하고 있지만 상황이 바뀌면 자신이 설 자리는 없다고 李지사는 믿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럴 바에야 비록 실패하더라도 대선에 참여해 일정수준의 득표를 하면 그 결과를 바탕으로 활동공간을 마련할 수 있다고 본 것 같다.

또 자신의 출마선언이 경선위배라는 여론의 역풍에 직면할 수도 있겠지만, 여론의 지지율을 李대표보다 높은 수준으로만 유지하면 신한국당이 동요하고 그 과정에서 조직과 세의 부족이 해소될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보고 결심했을 수 있다.

李지사는 12일 "출마 결단에 가장 큰 걸림돌은 뭔가" 라는 질문에 "당이지 뭐, 당. 당을 떠나자니 당의 꼴이…. 와해될 것 같고, 그렇다고 국민들과 내부조직원들을 무시할 수도 없고…" 라고 말했다.

이제 그의 말대로 신한국당은 상당한 타격을 받게 됐다.

자연히 신한국당의 반격이 뒤따를 전망이다.

李지사가 믿고 있는 여론이 이에 대한 방어벽이 돼줄 수 있을지에 李지사의 모든 게 달리게 됐다.

김교준.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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