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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령’ 치하의 민주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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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그가 연방 외쳤다. 굳을 대로 굳은 표정이었다. 한 음절 한 음절 힘주어 토해내는 그의 목소리엔 분노가 배어 있었다. 1일 국회 본관 로텐더홀에서 한나라당 차명진 의원을 에워싼 민주당 인사 중 한 명이었던 그는 낯설었다.

소란이 진정된 뒤에도 눈은 그를 좇았다. 로텐더홀을 가로지를 때마다 농성 중인 한나라당 의원들을 경멸하는 듯 쳐다봤다. 마치 “양아치들”이라고 내뱉는 듯했다. 본관의 민주당 쪽 복도 맨바닥에 앉은 그는 비장했다. “어느 누구도 함부로 민주당 쪽으론 못 들어온다”고 말하는 듯했다.

기억 속의 그는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젊은이였다. “직장생활을 접고 보좌관 직을 택한 건 국가에 기여하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그는 환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어둡다.

“당신이 어떻게 위원장이야. 날치기를 뭐라고 하는 줄 알아요. 도둑질이라고 한다는 말이에요.” 민주당 이종걸 의원이 3일 고흥길 문방위원장을 향해 독설을 퍼부었다. “노년의 나이에 뭘 그렇게 얻으려고…”라고까지 비아냥댔다. 고 위원장이 민주당의 반대에도 미디어 관련 법안을 상정한 걸 비난하면서다. 이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을 ‘사기 가해자’, 이명박 정부 사람을 ‘이명박 졸개들’이라고 한 적도 있다. 2004년 그는 원내 수석부대표였다. 민주당의 전신인 열린우리당이 과반 여당으로 기세등등하던 시절이었다. 그는 한나라당 사람들과 대화했고 말이 통하는 편이란 평을 들었다. 그는 당시 “한나라당의 입장이 요지부동”이라고 한탄했었다. 지금은 그가 요지부동이다. 그 역시 변했다.

그들만이 아니다. 민주당 사람들이 대체로 달라졌다. 증오가 또렷해졌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나라를 잘못 이끈다고 분노한다. 대부분은 나라를 망칠 것이라고까지 여긴다. 이명박 정부의 초반 실책과 저조한 인기가 그 전조라고 본다. 자기 확신도 강해졌다. 자신들은 정답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 된 방향으로 이끌 것이라고 믿는다. 어떻게 해서든 여권을 제지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탄다. 그래서 본회의를 막고 법사위를 막는다.

일부는 퇴행 현상도 보인다. 1970~80년대 민주화 운동의 틀로 여권을 바라본다. 전병헌 의원의 주장이다. “국회가 열릴 때마다 친이 쿠데타가 발생하고 국회가 사실상 계엄령에 들어간다…이 나라는 사실상 계엄령하에 들어가 있다고 규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의회가 행동 통제를 당하는데 어찌 민주국가라고 할 수 있느냐.” 민주당 사람들은 필리버스터(의사진행 방해)로 여당의 역점 법안 처리를 막았다. ‘계엄령 국회’였다면 가당키나 한 행동이었겠는가.

민주당 사람들은 외면한다. 미증유의 위기는 미증유의 대책을 요구한다. 어느 나라도 정답이라고 자신하지 못한 채 앞다퉈 일련의 대책을 쏟아내는 이유다.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에선, 그나마 정부가 일을 하고 있구나라고 국민이 느끼도록 해주는 게 정부의 제일 책무”(한나라당 홍사덕 의원)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사실상 국회를 마비시켰다. 국회에만 가면 되는 일이 없게 했다. 결과적으로 이명박 정부에 새로운 수단을 주기보단 지난 10년간 자신들이 해왔던 방식을 쓰라고 강요한 셈이 됐다. 이미 구닥다리가 된 방식 말이다.

고려대 최장집 명예교수는 “지나치게 강한 의견을 갖는 건 민주주의적 태도가 아니다. 자신의 이익과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타자와 교류하고 의사소통하며 서로 다른 이익을 놓고 타협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정치에선 절대 선도 절대 악도 없다. 다만 부분의 선과 부분의 악을 공유할 뿐이다. 상대는 적 또는 타도의 대상이 아니라 경쟁자 또는 협력자다. 자기 확신에서, 증오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 현실이 보이고 세상이 눈에 들어온다. 상대 당에 가렸던 “차라리 국회의사당을 폭파했으면 좋겠다”는 성난 국민의 눈동자도 마주할 테고 말이다.

고정애 정치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