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포폰’ 주문하니 1시간 만에 택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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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지난달 일어난 제과점 여주인 납치사건의 범인 정승희(32)씨가 2일 구속됐다. 정씨는 도피 과정에서 3대의 ‘대포폰(타인 명의로 불법 개설한 휴대전화)’을 사용한 것으로 경찰 수사 결과 밝혀졌다. 모두 인터넷사이트를 통해 구입한 ‘선불폰’으로 알려졌다. 선불폰은 요금을 먼저 지불하고 사용하는 휴대전화를 말한다. 정씨가 마지막에 사용한 선불폰은 중국인 명의로 개통한 것이었다. 정씨는 어떻게 대포폰을 확보할 수 있었을까.

◆‘1회용 물품’ 사듯 쉬워=각종 범죄에 악용되고 있는 대포폰의 실상을 알아보기 위해 취재진은 선불폰을 직접 구입해 보기로 했다. 우선 다음·네이버 등 포털사이트에서 ‘대포폰’을 검색했다. 다음 검색창에 대포폰을 치자, 자동으로 선불폰이 검색됐다. 검색된 사이트만 20개가 넘었다. 2007년 당시 정보통신윤리위원회(현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인터넷상에서 ‘대포폰 판매정보’를 차단하도록 한 바 있다. 네이버에선 대포폰으로는 검색이 안 됐고, 선불폰으로는 16개 사이트가 검색됐다. 이들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가입비 등 각종 부대비용이 없는 선불폰은 알뜰살림 아이템’이라는 내용의 글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검색된 판매 사이트 중 한 곳을 골라 연락했다. “휴대전화가 필요하다”고 말하자 “지역이 어디냐. 퀵으로 배달해주겠다”고 했다. “신용불량자인데 신분증이 없어도 되느냐”고 물으니 “알아서 해드린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렇게 선불폰을 개설하는 데 주로 외국인이나 노숙인들의 신용정보가 사용된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약속한 장소에서 한 시간 정도 기다리자 퀵서비스 배달원이 전화기를 들고 나타났다. 통화권이 포함된 휴대전화가 15만원, 퀵서비스 비용이 1만5000원이었다. 전원을 켜자마자 사용할 수 있었다. 휴대전화는 모서리 도색이 모두 벗겨진 2005년산 중고 제품이었다. 전화에는 1만원짜리 30분 통화권이 충전돼 있었다. 통화권은 편의점에서도 충전이 가능하다. 전화기에는 이전 사용자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한 사람 명의로 최대 12대 가능=이동통신 업체에 따르면 내국인 한 사람 명의로 업체당 3~5대까지 개설이 가능하다. 이통 업체가 3개인 만큼 12대까지 된다는 얘기다. 노숙인 등의 명의를 빌려 개설된 대포폰이 무작위로 사용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정부에서 이통사와 협의해 1인당 선불폰 개수를 제한하는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안다”며 “통신요금이 연체되거나 신분이 명확하지 않을 경우 개설 단계에서 제한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은 대포폰과 관련된 처벌 규정이 없어 애를 먹고 있다. 경찰 측은 “대포폰을 이용해 범죄를 저질렀다면, 그 범죄에 대한 처벌을 하고 있을 뿐”이라며 “대포폰을 사용하는 것 자체로는 처벌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은 2일 정씨에게 10만원과 의류를 전달해 도피를 도운 혐의(범인 도피)로 정씨 친구 김모(33)씨도 함께 구속했다. 정씨는 지난해 10월 서울 신정동과 1월 성북동에서 발생한 납치사건도 자신이 저질렀다고 이날 영장실질심사에서 시인했다. 경찰은 범행에 사용한 체어맨 승용차를 화곡동 에서 찾아내 이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이진주·이정봉·이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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