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참전용사 보훈사업 국가적 관심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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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 2일 경북영천에서는 향군묘지 기공식이 열렸다.

이 행사에 참석한 노병들은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제야 안심하고 눈을 감을 수 있다는 안도의 눈물이기도 하겠지만 수십년 세월이 지난 이제서야 호국용사들이 묻힐 자리를 배려하는 정부의 무관심을 원망하는 눈물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점에서 재향군인회가 추진하는 묘지사업은 값진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우리나라만큼 참전용사들을 홀대하는 나라도 드물다.

6.25포성이 멎은지 수십년이 지나도록 정부가 북녘땅에 억류된 국군포로들의 안부를 묻지 않았다면 외국사람들이 과연 납득하겠는가.

한국전쟁은 한국군 사상자만 1백만명을 기록한 참혹한 전쟁이었지만 순국용사의 10% 정도만 국립묘지에 안장돼 있다는 사실을 들으면 뭐라고 하겠는가.

더욱 기막힌 일은 생존한 한국전 참전용사 70만명중 상당수가 국립묘지 안장대상에서 제외돼 있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늦게나마 정부가 참전용사등 국가안보 기여자들의 사후를 보장하기 위해 영천과 임실에 각 5만2천기 규모의 향군묘지 건립을 추진키로 한 것은 박수받아 마땅한 일이다.

이날 기공식에서 월남전 참전용사들 또한 회한의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31만2천8백53명이 참전해 4천9백60명의 전사자와 1만9백62명의 부상자를 내는등 월남전에서 한국은 실로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

이들의 피가 없었다면 한국이 과연 '특수 (特需) 경기' 를 누리면서 70년대의 경제기적을 이뤘겠는가.

그럼에도 참전용사들에게 정부는 무엇을 했으며 사회는 무슨 보살핌을 베풀었는가.

월남전에 참전했다 고엽제 후유증으로 신음하는 분들도 많다.

96년말 현재 고엽제환자로 접수된 월남전 참전용사는 1만4천명에 이른다.

그러나 정부는 20년이 다 되도록 침묵하다 지난 92년이 돼서야 보상지침을 만들어 등급별로 보상하고 있다.

물론 이들의 희생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더구나 그들에 대한 우리사회의 냉담함은 고엽제환자들을 두번 울게 만들고 있다.

나 먹고 살기에 바쁜 국민들에게 그들은 '잊혀진 존재들' 일 뿐인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한국전및 월남전 참전용사들에게 감사하고 그들의 노후와 사후를 보살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향군묘지사업은 실로 숙연한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문제는 재원이다.

영천묘지만 하더라도 80억원의 향군 자체예산에 더해 3백20억원의 정부예산 지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조국수호를 위해 바쳐진 그분들의 희생을 생각한다면 우선적으로 예산이 지원돼야 한다는 점을 정부도 알고 있을 터다.

이제는 70~80대에 이른 한국전쟁의 노병들은 물론 어느덧 귀밑머리 희어지기 시작한 월남전용사들, 고엽제 질병으로 죽어 가는 역전의 용사들이 묻힐 곳이 없어서야 말이 말이 되겠는가.

김태우 핵전문가,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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