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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 우리 삶의 또 다른 풍경 … 노숙인 24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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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내가 누구인지 알려주세요
임영인 지음, 삶이 보이는 창, 216쪽, 1만원

약 30%가량은 고아원 출신, 약 60%는 결손가정, 알코올중독·가정폭력 가정에서 성장. 평균 나이는 50세…. 우리나라 노숙인에 대한 통계다. 그러나 노숙인들은 우리에게 ‘낯선’ 사람들이다. 지저분하고, 냄새 나고, 게을러 보이고, 그 ‘존재’ 자체가 위협적으로까지 느껴진다. 하지만 그들은 가까이에 있다. 서울역에 350명, 용산역에 80명, 영등포역에 150명, 청량리 역에 50명….

이 책은 노숙인 진료소를 운영하는 성공회 임영인 신부가 직접 만나고 대화하고 겪은 노숙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생생하면서도 담담하게 그려낸 우리네 삶의 또 다른 풍경이다.

“신부님, 나는 누구예요? 내가 누군지 좀 알려주세요.” 이렇게 물은 사람은 서울역을 기반으로 35년을 살아온 노숙인 고현길씨다. 일곱 살 때 그의 어머니는 서울역에서 그를 두고 떠나며 “잠깐 다녀올게. 절대로 딴 데 가면 안 돼”라고 말했다. 이후 그는 경찰서·시립아동보호소·고아원·교도소를 전전했지만 그의 삶의 중심은 여전히 서울역이다. 임 신부는 이렇게 적었다. “‘절대로 딴 데 가면 안 돼’ 라던 어머니의 말, 혹시 지금까지 그의 발목을 잡고 있는 걸까.”

임 신부에 따르면 을지로입구 역의 50~60명의 노숙인들은 ‘자기 관리’를 잘하는 편이다. 밤 10시에 잠자리에 들고 새벽 4시쯤이면 일제히 일어나 떠난다. 술도 자제하고, 나이든 사람을 대접하고, ‘대장’도 있다. 그런가 하면 노숙인들의 세계에도 ‘주말’은 있다. 주말이면 그들은 친구도 만나고, 일자리를 알아보기 위해 멀리 가기도, PC방에서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노숙인들에겐 그놈의 술이 원수다. 그들을 상대해야 하는 임 신부는 “마치 블랙홀 앞에 서있는 것 같다. 내 에너지, 열정, 뼛속에 든 진액을 다 빨아가는 듯하다”고 털어놓는다.

그런데 왜 그들은 노숙인이 되는 걸까. “그저 ‘바람’ 때문이다. 평범하고 성실하게 생활을 하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무너지곤 한다. 한동안 잠잠하던 김민석(가명·28)의 가슴에도 바람이 불었다.” 임 신부의 해석이다.

임 신부는 밑바닥에서 ‘도심 속의 섬’처럼 고립된 채 살아가는 그들에게서 ‘사람’을 보았을 뿐이라고 한다. 책의 말미에 실린, 노숙인 선교의 진정성을 꼬집는 이야기도, 그들이 가치 있는 삶을 찾아가려고 해도 그것은 돕지 않는 현실이 문제라는 지적도 설득력 있게 들린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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