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과학 칼럼

로봇이 노인들의 동반자가 되는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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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우리나라의 인구 동향이 심상치 않다. 2003년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어느새 저출산율 세계 1위 국가가 됐다. 불과 30~40년 전인 1960~70년대만 해도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표어 아래 산아 제한 정책을 폈던 국가가 이제는 아이를 너무 안 낳아 걱정인 나라가 된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2000년을 기점으로 한국은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전체 인구의 7% 이상을 차지하는 고령화 사회의 기준을 이미 넘어섰고, 2030년께는 미국이나 유럽 등 최선진국처럼 고령 인구가 전체 인구의 무려 20%를 웃도는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저출산이 생산연령 인구의 감소, 즉 노동력의 감소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반면 상대적으로 급격하게 늘어나는 노인 인구로 인해 부양 문제라는 심각한 사회 문제도 발생한다. 정부의 획기적인 출산 장려 정책이 단기간에 효과를 발휘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것을 막는 것이 최선이다. 이와 별도로 불가피하게 발생하게 될 노인 부양 인력 부족 문제에 대한 실질적 해결책 마련도 절실하다.

묘수 중 하나가 바로 지능형 로봇의 활용이다. 로봇이 갖고 있는 장점 중 하나가 바로 사람과 같은 팔과 손을 갖고 있어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대신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노인 부양 인력 부족 문제에 대한 훌륭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이미 자동차 생산공장과 같이 위험한 산업현장의 단순반복적인 작업에서 노동자들을 해방시킴으로써 뛰어난 능력을 입증한 로봇은 그 활동영역을 우리의 일상 생활공간으로 넓히고 있다. 아직은 집 안 청소를 대신하고 아이들 놀이 상대가 되어주는 정도지만 머지않은 장래에 사람 대신 식사를 차리고 설거지까지 할 수 있는 수준으로 진화할 것이다. 이 정도로 기능이 향상되면 노인들의 잃어버린 안경을 찾아주거나 화장실 부축 등 진정한 도우미로서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1999년 소니사는 감정표현이 가능한 애완용 강아지 로봇 ‘아이보’를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팔기 시작했다. 시판 당시 아이보는 300만원이 넘는 고가에도 불구하고 20분 만에 인터넷을 통해 5000대가 팔려나갈 정도로 폭발적 인기를 누렸다. 이후 일본에서는 아이보 클럽이 생기고, 애완용 개를 키우듯 로봇을 훈련시킨 사람들이 모여 로봇 강아지 재롱 경연대회를 열기도 했다. 강아지 로봇이 많은 사랑을 받았던 이유는 입력된 대로 움직이는 기계가 아니라 스스로의 감성을 표현하며 주인의 의지에 따라 행동양식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비록 단순하고 보잘것없는 기능이지만 인간의 심성의 보호본능을 자극함으로써 로봇 신드롬을 일으킨 것이다.

인간의 형상과 오감에 해당하는 인식 능력을 로봇에 장착하는 것은 자동화 기계나 컴퓨터와 달리 로봇이 우리에게 또 하나의 인격체로 받아들여진다는 의미로, 노인들의 고독감 해소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표정이나 말투, 그리고 처해 있는 상황을 인식해 노인의 감정상태를 알아내고 적절하게 대응해 즐겁게 해주거나 위로해줄 수 있는 역할은 로봇 아니면 불가능하다. 로봇은 노인들에게 다가가 고스톱을 치자고 떼를 쓸 수도 있고, 장기 내기도 할 수 있는 소중한 동반자가 될 수 있다.

우리가 로봇에 기대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역할은 노인들이 세상과 좀 더 쉽게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매개체 기능이다. 로봇이 노인들의 투약 시간이나 병원 방문 날짜 등을 잘 챙길 수 있으니 자식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음을 놓을 수 있다. 또한 로봇을 통해 ‘로봇 노인방’이 구축되면 로봇이 맺어준 할머니와 영상 데이트를 즐길 수도 있다. 집 안에서 홀로 쓸쓸히 지낼 수밖에 없는 노인에게 자식 도움 없이 스스로의 생활을 하는 데 로봇은 결정적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다.

김문상 KIST 지능로봇 연구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