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 좋은 놈, 누군 나쁜 놈 익숙한 영화공식은 싫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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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했다는 거’로 끝나는 심부름센터 직원들의 말투는 이 긴박한 스릴러의 웃음 포인트 중 하나다. 김한민 감독이 직원으로 직접 출연했다. [김상선 기자]

 19일 개봉한 영화 ‘핸드폰’은 ‘살인의 추억’ ‘세븐 데이즈’ ‘추격자’ 등으로 이어지는 소위 ‘한국형 스릴러’의 또 다른 성취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처음에는 ‘당하는 놈(휴대전화를 잃어버린 연예인 매니저 오승민)’과 ‘나쁜 놈(휴대전화를 주워 돌려주지 않는 대형마트 직원 정이규)’이 쫓고 쫓기는 전형적인 스릴러 문법을 따르는 듯싶다. 하지만 중반에 접어들면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가 급반전되고, ‘좋은 놈’과 ‘나쁜 놈’의 구분이 흐려진다. 관객은 승민과 이규를 놓고 당최 누구 편에 서야 할지 망설이게 된다.

 기존 스릴러 영화에서 좀처럼 하기 힘든 경험을 하게 만드는 이 영화를, 각색과 연출을 맡은 김한민(40) 감독은 “(범인과 피해자 모두에게 공감하는) 쌍방향 스릴러”라고 부른다.

김 감독은 연쇄밀실살인을 다룬 ‘극락도 살인사건’으로 2007년 230만 관객을 동원하며 화려한 데뷔식을 치렀다. 무대가 어촌에서 도시로 바뀌었을 뿐 ‘정석’대로 가지 않는다는 점에서 ‘핸드폰’은 전작의 연장선상에 있다. 감독이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 너무나 익숙한 장르영화의 공식을 되풀이하는 건 소모적이며 덜 대중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담백 설렁탕 아닌 얼큰 해장국=‘삐딱하게’ 가는 이러한 시도 중 대표적인 것이 ‘감정노동자(고객에게 친절해야 한다는 스트레스를 안고 사는 서비스업 종사자)’의 폭발할 듯한 스트레스를 표현한 이규(박용우)의 캐릭터 구축이었다. 그는 평소에는 누구에게나 ‘친절한 이규씨’지만 내향적인 성격 탓에 현실에 대한 불만과 분노가 혈관 밑바닥까지 스며들어 있는 남자다.

“여느 스릴러라면 이규를 사이코로 만들었겠죠. 이규가 사이코라면 영화 전개는 쉬웠겠지만 너무 뻔해질 것 같았어요. ‘감정노동자’의 틀을 그냥 빌려오기보다는 되풀이되는 일상에서 외로움과 공허함을 느끼는 현대 도시인의 모습을 넣고 싶었어요. 승민 휴대전화에 들어있는 아내(박솔미)의 사진에 반하는 식의 설정을 넣은 것도 복합적인 인물을 만들기 위해서였죠.”

반면 욕을 입에 달고 살며 웬만한 감정은 담아두지 않고 분출하는 외향적 인물인 승민(엄태웅)은 이규와 정확히 대각선상에 서 있다. 승민은 이규의 협박과 데리고 있던 여성 연예인의 섹스동영상 유출 등으로 측은할 정도로 궁지에 몰린다.

하지만 아내의 외도를 눈치채면서부터는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두 남자의 대결로만 일관하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가 현대인의 소통 불능 문제까지 건드리려는 야심 탓에 ‘핸드폰’은 “이야기를 너무 벌렸다”는 비판을 듣기도 한다. “전 여러 재료를 섞어 얼큰하게 끓인 해장국을 의도했어요. 해장국집에 오셔서 맛이 깔끔하고 담백한 설렁탕 없느냐라고 물으시면 어찌 대답해야 할지(웃음)….”

◆엄태웅·박용우의 호연=‘핸드폰’의 결말을 놓고 관객들의 추측이 분분한 것도 영화가 쉬운 길을 택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특히 승민과 이규가 혈투를 벌이다 승민의 집이 폭발하는 대목에 대해 ‘라이터를 켠 사람이 누구냐’는 논란이 많다. 김감독은 “물론 정답은 있지만, 관객들이 자유롭게 생각하도록 결말을 열어놓고 싶다”고 말했다. 글쎄, 이런 유별난 선택에 극장가의 반응은 아직 달아오르지는 않은 듯 하다. 개봉 1주일이 지난 26일 현재 전국 관객은 35만 명 정도. 감독 스스로도 “캐스팅 만족도는 100% 이상”이라고 밝혔듯 엄태웅·박용우의 나무랄 데 없는 호연을 생각한다면 한참 아쉬운 숫자이긴 하다.

기선민 기자 ,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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