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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독서계 문예서 인기 부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4면

올 상반기 일본 독서계의 가장 큰 변화는 문예서의 인기부활이다.

지난 수년간 건강관련, 컴퓨터관련서적 등에 밀려 고전을 면치못했던 문예서가 올들어 속속 베스트셀러를 터뜨리자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문예서 가운데 최대의 히트작은 니혼게이자이 (日本經濟) 신문에 장기연재됐던 와타나베 준이치 (渡邊淳一) 의 소설 '실락원 (失樂園.강담사)' . "저급한 3류 에로물" "남녀간의 절대적인 사랑을 그린 수준작" 이라는 엇갈린 평가를 받으며 화제를 모았던 이 소설은 상.하권 합해 2백50만부이상 팔리는 기염을 토했다.

'실락원' 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불륜을 소재로 다른 서적까지 일대 붐을 일으키는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대형 출판유통업체인 '도한 (東販)' 이 발표한 '97년 상반기 베스트셀러' 조사에 따르면, 불륜을 거듭하는 유부녀를 다룬 하야시 마리코 (林眞理子) 의 '기분나쁜 과실' 이 23만부, 소설은 아니지만 불륜으로 고민하는 여성의 마음을 노래한 다와라 마치 (俵万智) 의 와카 (和歌 : 5.7.5조의 일본 전통시) 집 '초컬릿혁명' 이 30만부이상 팔려나가 '실락원' 히트에 따른 짭짤한 반사이익을 봤다.

소년의 눈을 통해 전시하의 일상을 극명하게 그린 세노오 갓파 (妹尾河童) 의 자전소설 '소년H' 도 상.하권 합해 1백만부를 돌파했다.

인기만화를 소설화한 아마기 세이마루 (天樹征丸) 의 '긴다이치 (金田一) 소년의 사건부' 는 '이지메 (집단적인 괴롭힘)' 등 현대의 교육문제와 미스테리를 흥미롭게 조화시킨 작품으로, 곧 1백만부를 넘어설 기세다.

아쿠다가와 (芥川) 문학상 수상작가인 재일동포 여류작가 유미리 (柳美里) 의 작품도 인기를 끌어 수상작인 '가족시네마' 가 30만부, '물가의 요람' 이 20만부 이상 팔렸다.

흥미위주의 책이 잘 팔렸던 지금까지의 추세와는 달리 '이지메' '가족의 붕괴' '불륜' 등 사회문제를 테마로 한 문예서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흥미' 와 '사회성'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독자들의 자율적인 반동 탓이란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지난해 문예서 가운데 1백만부이상 팔린 작품이 정치가출신의 소설가 이시하라 신타로 (石原愼太郎)가 쓴 '동생' 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 문예서의 인기는 예사롭지 않다.

문예서 히트의 배경을 특정출판사의 치밀한 광고.판매전략에서 찾는 시각도 있다.

잘나가는 '실락원' '소년H' '가족시네마' 등 3작품은 모두 고단샤 (講談社)에서 간행된 것들이다.

일본 출판계는 그러나 문예서 전체시장에 활기가 붙은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출판과학연구소의 사사키 도시하루 (佐佐木利春) 연구원은 문예서의 활기에 대해 "요즘엔 인터넷의 보급 등으로 정보가 넘치는 바람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천천히 판단하기가 힘들게 됐다.

그래서 너도나도 화제의 책에만 몰려드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고 지금은 문예서가 이를 주도하고 있을 뿐이다" 라고 분석했다.

[도쿄 = 김국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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