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그룹, 신입 초임 깎고 직원 임금은 묶어 일자리 늘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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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앞으로 30대 그룹에 입사하는 대졸 신입사원은 초임을 지금보다 최대 28% 적게 받을 전망이다. 일자리 나누기 차원에서 대졸 초임 수준을 줄이고 그만큼 신규 채용자를 늘리는 데 30대 그룹 채용 담당 임원들이 뜻을 모았기 때문이다. 재계는 또 기존 직원의 임금도 당분간 동결하기로 했다.


30대 그룹 채용 담당 임원들은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고용 안정을 위한 경제계 대책 회의’를 연 뒤 이런 내용의 임금 조정 계획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정부와 공기업에서 추진 중인 ‘대졸 초임 삭감을 통한 일자리 늘리기’가 민간 차원으로 확산하게 됐다.

정병철 전경련 부회장은 이날 기자 회견에서 “재계는 심각한 고용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임금 하향 안정화를 협의, 우리 경제 수준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대졸 초임을 합리적으로 조정했다”고 말했다.

◆얼마나 어떻게 깎나=재계가 삭감 기준으로 삼은 것은 초임 2600만원이다. 초임이 이 금액을 넘어서는 기업은 최대 28%까지 낮추자는 것이다. 대졸 초임이 2600만∼3100만원인 기업은 0∼7%, 3100만∼3700만원인 기업은 7∼14%, 3700만원이 넘는 기업은 14∼28%를 줄인다는 계획이다.

전경련이 보도자료를 통해 내놓은 2600만원의 기준 근거는 ▶지난해 우리나라 100인 이상 기업의 대졸 초임 수준(2441만원) ▶우리보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3배 높은 일본의 2008년 대졸 초임(2630만원·지난해 평균 환율 기준) 등을 들었다. 또 환율 변동의 영향을 없애기 위해 일본·싱가포르·대만 등 경쟁국들의 1인당 GDP 대비 대졸 초임 수준도 함께 비교했다고 밝혔다.

임금 삭감의 기준이 되는 2600만원을 넘는 기업은 각자의 실정을 고려해 줄이고, 2600만원에 미치지 못하는 기업은 자율 판단에 따라 조정한다는 계획이다. 정 부회장은 “임금이 줄어드는 신입사원과 기존 직원의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각 기업들이 앞으로 수년간 기존 직원에 대한 임금을 가급적 동결한다는 데도 뜻을 모았다”고 덧붙였다.

이날 전경련의 발표에 이어 실제로 임금 삭감을 발표한 기업들이 잇따라 나왔다. 삼성은 이날부터 대졸 신입사원의 연봉을 계열사에 따라 10∼15% 줄이겠다고 밝혔다. 삼성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대졸 초임을 줄여 생기는 여력은 고용 안정에 활용할 것”이라며 “고용 안정이란 현재 있는 직원을 내보내지 않는 것을 포함한 포괄적인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LG도 이날 “일자리 나누기에 동참하는 의미에서 계열사별로 대졸 신입사원 초봉을 5∼15% 삭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합의에 가까운 ‘협의’?=정 부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경제위기를 맞아 재계가 임금 삭감과 동결 등을 통해 일자리 안정을 도모하자는 데 뜻이 있다”며 “이번 결정은 회원사의 합의에 가까운 ‘협의’로서 앞으로 제대로 시행되는지를 전경련 차원에서 모니터링하고 시행을 독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룹이나 계열사들마다 처한 상황이 달라 재계의 협의대로 임금 삭감과 동결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전경련이 추진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날 삼성·LG는 대졸 초임 삭감을 발표했지만 다른 기업들은 아직 확정된 내용이 없다며 밝히지 않았다.

추가 채용 등 일자리 나누기 계획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임금부터 줄이겠다는 발표에 대한 반발도 있다. 기업들이 아낀 재원으로 신규 직원이나 인턴을 얼마나 더 뽑을지 뚜렷한 수치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기업 관계자는 “노동조합 쪽의 반발 정도 등을 파악해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이승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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