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배칼럼] 정치의 진정한 세대교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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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요즘 정가엔 신한국당 탈락후보들의 무더기 이탈설, 9월 대란설들이 분분하다.

경선을 다투었던 세력들이 승복하지 않고 독자행보를 하고 있는데다 심지어 '킹메이커' 라는 이들조차 자신들이 중용되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당외 인사를 멋대로 거론해대는가 하면 청와대조차 어중간한 몸짓으로 그런 혼란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지금 정치적 흐름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가지 요인들을 보면 우리 정치가 얼마나 감성적인지 한눈에 드러난다.

다자 (多者) 대결로 나가면 지역고정표를 가지고 있는 후보의 승리는 떼논 당상이라고 한다.

지역감정이야말로 대표적인 감성적 요인이다. 어떤 야당인사가 월북하자 이를 두고 색깔론이 등장한다.

선거때마다 기본메뉴처럼 등장하는 이 용공성 문제 역시 실정법적 문제라기보다는 분단국의 불안한 안보정서를 이용하는 감성적인 문제다.

최근 여당후보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준 병역문제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후보의 도덕성이나 혹은 그 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부정문제로 추궁되는 것이 아니고, 내 아들은 사선에서, 침투훈련장에서 낮은 포복을 하는데 왜 네 아들은 안 가느냐는 것이다.

여성들이 이 문제에 더욱 분노하고 있다는 것도 그런 감성적 연유다.

선거운동이 치열해지면 언제나 이런 감성적 요인들이 막판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유권자들의 감성을 자극할 수많은 전술들이 개발된다.

우리 선거에 유독 비방전이 심하고 흑색선전이 난무하는 것도 그런 틈새를 노리다가 어디선가 감성의 선을 건드리기만 하면 이길 수 있다는 계산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성투표가 결국 우리 정치를 구태의연한 수준에 묶어왔던 것도 사실이다.

똑같은 색깔론, 용공조작론, 똑같은 후보자 친인척 훑기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그러나 이번에는 좀 이성적인 문제로 눈을 돌려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많은 학자.전문가들, 그리고 각종 여론조사를 통해 드러난 국민의 여론은 국가경제가 가장 큰 문제고, 교육개혁.사회정의실현 등을 중요한 과제로 꼽는다.

그리고 그것을 헤쳐나갈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개혁적 자질이라고 지적되고 있다.

개혁을 표방한 김영삼 (金泳三) 문민정부가 4년간 엄청난 무능으로 국가를 망쳐놨지만 그런 잘못된, 말뿐인 개혁이 아니라 진짜 개혁을 절실하게 바라고 있는 것이다.

개혁의 본질은 원칙의 회복, 부패의 척결로 집약될 것이다.

짜증나는 교통체증은 아랑곳 없이 엉뚱한 곳에 가서 단속이라는 이름으로 뇌물을 뜯는 교통경찰의 모습, 산지에서 2백원 한다는 배추가 슈퍼에서 2천원에 팔리는 유통부조리, 허가를 위해 돈을 바치고 하도급주면서 돈을 떼고 그래서 부실투성이가 됐다는 경부고속철도, 촌지로 왜곡된 교육풍토와 천문학적인 사교육비의 폐해가 아무리 자주 지적돼도 그런 부조리와 부패가 제대로 파헤쳐지지 않는다.

이젠 부패의 어느 한 고리만 잘라서는 해결되지 않을 정도가 돼버린 것이다. 온몸으로 전이 (轉移) 된 말기암 (末期癌) 처럼 구조화된 부패가 국가경쟁력을 좀먹는 심각한 한국병이 되고 있는 것이다.

문민정부 4년동안 그 병은 더욱 도졌다.

아직 우리 정치는 부패의 볼모다.

감방에 앉아 있는 전직 대통령들이 입 한번 벙긋하면 정치권이 무너진다는 것이다.

피고석에 앉아 있는 기업인이 큰소리치고 나서면 온 정치권이 긴장하는 판이다.

부패의 볼모가 돼 있는 구정치권이 다시 정권을 잡으면 진정한 개혁은 불가능할게 뻔하다.

가장 쉽게 부패해버린 민주계와 같은 세력이 재집권하는 일은 없을 것인지, 개혁을 내걸지만 과연 개혁적인지, 부패에 연루된 혐의가 없는지, 그런 것들이 차기정권 선택과정에서 따져봐야 할 대목들이다.

우리에게는 아직 매듭지어야 할 과제들이 남아 있다.

대선자금문제가 그렇고 한보사태가 그렇다.

경부고속철도 부실의 내막과 금융부조리들의 배경들이 꼼꼼히 따져져야 한다.

그런 부패의 고리에서 자유스럽지 않고서는 진정한 정치의 세대교체가 이뤄질 수 없는 것이다.

차기정권을 선택하는 제1의 기준은 반부패 (反腐敗)가 돼야 할 것이다.

김영배 뉴미디어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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