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식약청의 '불량 발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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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성식 정책기획부 기자

충북 음성군의 금흥식품 임직원들은 최근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낸다고 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이 10일 불량 무말랭이를 사용해 만두를 제조한 회사로 발표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불과 닷새 뒤인 15일 혐의를 벗었다.

이 회사가 '불량 만두 회사'가 된 과정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16일 식의약청 관계자:충북도청 조사 보고서에는 염장무라고 돼 있을 뿐 자투리 무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내용이 없었다. 그래서 '불량 리스트'에 넣었고 사후에 조사해 보니 문제가 없었다.

▶10일 충북도청 보고서:관련 장부 확인 결과 무 말랭이를 사용한 흔적을 발견하지 못함. 염장무를 납품받아 가공해 만두를 생산했음.

▶16일 도청 관계자:보고서를 보낸 뒤 전화로 식의약청 담당자에게 무 말랭이를 사용하지 않은 사실을 재확인시켰다.

상황을 종합하면 금흥식품은 8~10일 도청 조사에서 이미 무혐의가 입증됐다. 백번 양보해 식의약청의 말대로 상황이 모호했다면 발표 전에 현장을 확인하든지, 충북도청에 문의했어야 옳았다.

아니면 일부 회사처럼 아예 조사 중인 회사 명단에 올렸더라면 금흥식품이 큰 피해를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투리 무 사용 가능성만으로 이 회사를 '불량 만두 회사'로 불쑥 발표했다.

식의약청은 명단을 서둘러 발표하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고 항변할 것이다. 심창구 청장도 "여론에 밀려 무리하게 조사한 감이 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여론은 옥석을 가려 달라는 것이었지 '부실 발표'를 요구한 게 아니었다.

식의약청 관계자는 16일 "이제 그만하자. 자그마한 일(금흥식품건을 지칭)인데 왜 자꾸 그러느냐"고 했다. 그러나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과거에도 식품당국이 제 기능을 못해 선의의 피해자가 생긴 적이 있다. 공업용 우지라면.포르말린 통조림건 때 관련 업체들이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았다.

무심코 던진 돌멩이에 맞은 개구리는 죽을 수도 있다. 만의 하나 금흥식품이 문을 닫게 된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신성식 정책기획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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