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록 박정희 시대] 13.경제 제일주의 "가난 추방은 천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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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민간인이면서 '5.16 혁명주체세력' 으로 통하는 김용태 (金龍泰.72.전의원) 씨는 박정희 (朴正熙) 전대통령의 오랜 술친구였다.

그는 김종필 (金鍾泌.JP) 자민련총재의 서울대 사대 동창이자 같은 충남 출신이며 6.25 당시 대구로 피난갔다 JP의 주선으로 박정희중령의 집에 한달여 기식했다.

호주가인 金씨는 이때부터 술친구의 연 (緣) 을 쌓았고, 5.16당시에는 JP와 함께 혁명을 알리는 포고문 인쇄작업을 맡아 주체세력의 반열에 올랐다.

박정희가 술을 마시다 얼큰히 취하면 항상 빼먹지 않고 되풀이하는 바람에 그의 귀에 박힌 얘기 한토막. "임자, 임자는 배고픈게 어떤건지 아나. " 자문자답 (自問自答) 형식의 회상이기에 대답은 필요없었다.

"난 어릴 때 말이야 벤또 (도시락의 일본어) 를 못싸갔어. 점심시간에는 운동장 한 구석에 쪼그리고 앉았다가 점심시간 끝날 때쯤 배가 터지게 냉수를 들이켜고 교실로 되돌아 가곤 했지…. 학교 끝나고 집에 가도 먹을게 있을리 있나. 솥뚜껑도 열어 보고 찬장도 뒤져보다 아무 것도 없으니까 손가락으로 간장 한번 찍어 먹고 또 물 마시고…. " 朴대통령의 집안이 찢어지게 가난했던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를 잉태한 어머니가 식구의 입을 늘리지 않기 위해 간장을 마시고 언덕에서 뒹굴기도 했다.

朴대통령은 이렇게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가난으로 인한 생명의 위협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을 '하늘의 뜻' 으로 해석하며 자신을 추슬렀다.

"세상 만물에는 다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는데, 내가 태어난 데에는 필시 하늘의 뜻이 있었지 않았겠나…. 내게 주어진 하늘의 뜻은 이 민족의 가난을 추방하는 기적을 창조해 내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어.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가난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한맺힌 삶을 살아왔는가.

" 朴대통령이 71년 12월 자신이 존경했던 군선배 이용문 (李龍文) 장군의 아들 이건개 (李健介.자민련의원) 검사를 수도 경찰의 총수 (서울시경국장) 로 임명하는 자리에서 한 말이다.

朴대통령은 어린 시절부터 귀여워 해온 李검사였기에 임명장을 준뒤 따로 불러 이런 속생각을 독백하듯 털어놓은 바 있다.

가난 추방은 박정희 스스로의 삶속에서 확신한 하늘의 뜻, 즉 '천명 (天命)' 이었으며 전생애를 통해 변함없이 일관한 철학이었다.

朴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경제개발의 신화를 가꾸었던 김정렴 (金正濂.74.전대통령비서실장) 씨는 "朴대통령의 경제개발에 대한 집념은 단순히 경제차원이 아니라 국가안보와 통일, 정치적 민주주의와 인권까지 모두 경제에서 나온다는 인식에 기초한 것이기에 사실 그의 통치철학 전부나 마찬가지" 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예로 朴대통령은 "농촌의 빈농과 도시의 노무자들이 배를 곯지 않아야 북한에 먹히지 않는다" 고 역설하곤 했다.

소련식 공산혁명 이론의 주인공인 도시 프롤레타리아트와 중국식 공산혁명의 주인공인 빈농이 없어져야 공산화를 막을 수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朴대통령은 이를 위해 "빈농은 자작농으로, 도시 노무자들은 기능공으로 안정된 소득의 중산층이 돼야 한다" 고 주장했다.

이런 생각은 새마을운동과 직업훈련이란 형태로 구체화됐다.

朴대통령은 또 빈곤으로부터의 해방이 가장 중요한 인권보장이며, 건전한 중산층이 형성된 뒤에야 정치적 민주주의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이런 입장이 정치에는 철권통치로, 경제에서는 경제 제일주의로 나타난 것이다.

그는 나아가 통일 역시 남한이 부강한 나라가 됐을 때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는 것이지, 공산주의자들과의 대화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인식을 가졌다.

이같은 경제개발에의 집념과 경제중심 철학은 박정희라는 인물이 군인.혁명가.대통령으로 걸어온 여러 길목, 주요 고비에서 그 스스로의 육성을 통해 확인된다.

군인 박정희는 6.25 와중에서 전쟁의 참상마저 가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구 피난시절 소금을 안주삼아 깡소주를 마시던 朴중령이 술친구 김용태씨에게 토로했다.

"전쟁이 빨리 끝나야 할텐데…. 참 비극이야. 전쟁을 막으려면 나라가 힘이 있어야 하는거야. 공산주의 침투를 막으려면 빈곤을 없애는 길 밖에는 없어. "

박정희는 과묵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술을 좋아했던 그는 술기운을 빌려서야 감춰진 속마음을 드러내곤 했다.

어쨌든 당시 술자리의 결론은 "군대가 너무 썩었어" 였다.

군시절 그는 군의 당면과제로 군내의 부정부패 추방을 생각했다.

57년 6군단 부군단장 시절 박정희준장은 전방에 설치할 철조망을 빼내 동대문시장에 팔아 먹으려던 방첩 부대원을 붙잡은 산하부대 중대장에게 "잘했어. 그런 도둑놈들은 모두 다 잡아넣어야 돼. 장제스 (蔣介石) 군대가 왜 망했는줄 아나. 총 나눠주면 팔로군 (毛澤東의 공산군)에 팔아먹은 도둑놈들 때문이야. 썩은 군을 바로잡지 못하면 나라를 바로잡지 못해" 라며 격려했다.

그러나 朴장군의 소극적 태도는 시간이 지나면서 보다 적극적이고 대담하게, 그리고 보다 정치적으로 변해갔다.

4.19 직후 부산 군수사령부 사령관 박정희소장은 송요찬 (宋堯讚) 참모총장에게 군의 부정선거 협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진용퇴하라는 내용의 친필편지를 보냈다.

宋총장은 박정희장군이 5사단장 시절 폭설로 수십명의 부하를 잃은 사고를 당했던 당시 직속상관이던 군단장으로, 朴장군을 문책하는 대신 표창을 준 은인이다.

朴소장의 편지사건을 계기로 김종필대령을 중심으로 한 육사 8기생들은 정군 (整軍) 을 주장한 연판장을 만들어 돌렸고, 결국 宋총장은 전역할 수밖에 없었다.

朴장군의 정군운동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으로까지 이어진 것은 朴장군의 정치에 대한 깊은 불신으로 미뤄볼 때 당연한 수순이다.

무능한 정치인이 이 백성을 가난 속에서 허덕이게 내버려두고 있다는 것이었다.

군수사령관 박정희의 술친구였던 이병주 (李炳注.소설가.작고.당시 부산 국제신보 주필) 씨는 朴장군의 정치관을 시사하는 일화를 글로 남겼다.

이승만 (李承晩) 대통령이 하야한 얼마후 송도 바닷가에서 朴장군.李주필, 그리고 朴장군의 대구사범 동기인 황용주 (黃龍珠.당시 부산일보 주필) 씨등이 술판을 벌였다.

朴장군은 李주필이 李대통령 하야에 대해 쓴 사설에 대해 논평했다.

"李주필이 너무 정이 많은 것 아니오. 미국에서 교포 모아놓고 연설이나 하고, 미국 대통령에게 진정서나 올린게 독립운동입니까. 독립운동 했다는거 말짱 엉터리요, 엉터리. "

대구사범 동기인 黃주필이 "싸잡아 그렇게 말하면 안돼. 진짜 독립운동한 사람들도 많아" 라고 하자 朴장군은 더 흥분했다.

"해방 직후 우후죽순처럼 정당을 만들어 나라를 망친 자들이 누군데. 독립운동 했습네 하고 나선 자들 아닌가. "

이날의 결론은 군대신 '정치판이 썩었다' 였다.

그로부터 1년 뒤 마침내 군인 박정희는 5.16을 통해 혁명가로 변신했고, 그의 생각을 요약해 국민 앞에 내놓은 것이 혁명공약 6개항이다.

그중 제4항이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 국가자립경제 재건에 총력을 경주한다' 이다.

혁명의 청사진을 만들었던 제1참모 김종필 자민련총재는 최근 인터뷰에서 공약중 4항, 그중에서도 '재건 (再建)' 이란 표현을 강조했다.

"혁명 전부터 朴대통령과 항상 얘기하던 것이 경제 제일주의였어요. 경제력없이는 아무 것도 안된다는 거였죠. 그래서 나온 말이 '나라를 새로 만든다' 는 의미의 '재건' 이었습니다.

그래서 혁명 지휘부를 국가재건최고회의라고 이름을 붙였어요. " 그런데 '천명' 을 받아 목숨을 걸고 정권을 잡았다는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얼마 후부터 "괜히 혁명했다" 고 후회하곤 했다.

62년 박정희 대통령권한대행의 비서실장이었던 이동원 (李東元.71.국민회의) 의원 역시 호주가.

朴대통령과 밤을 새우며 통음하던중 직접 朴대통령의 탄식을 들었다.

"李실장, 내 아무래도 혁명 잘못한 것같소. 멋진 나라 만들려는 꿈이 있어 나섰는데…. 돈이 있어야 뭘 좀 해보지, 맨 몸으로 뭘 하겠소. "

이날 朴대통령은 가난한 나라 꼴을 "한겨울에 문풍지조차 없어 찬 바람은 들어오는데 땔감이 없어 벌벌 떨어야하는 초가집, 그것도 세간마저 싹 도둑맞은 초가집" 으로 비유했다.

그런데 혀를 차다가 술잔을 휙 비운 그의 눈에서 갑자기 독기가 뿜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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